디귿(ㄷ)자 모양의 테이블에 10여명의 또래 아이들이 둘러앉았다. 먼저 앞으로 나선 건 이모(14)군이었다. 동그란 안경을 쓴 이군은 또래보다 덩치가 작아 보였다. 앞에 놓인 칠판에 그는 커다란 선을 쓱쓱 그려나갔다. 살아오면서 해마다 하루에 통상 몇 시간씩 게임을 했는지 그린 그래프였다. 높낮이가 들쭉날쭉한 꺾은선 그래프에 나이마다 ‘피파’ ‘롤’ 등 게임의 이름이 적혔다.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열두살 땐 오버워치를 PC방에서 하루 3시간 정도 친구들이랑 했어요. 그러다가 롤이라는 게임을 만났어요. 한동안 게임을 안 하다가 피파랑 롤을 애들이 많이 해서 저도 하게 됐어요. 집에서 하루에 여섯 시간씩 했던 거 같아요.”
또렷한 목소리로 이군이 발표를 끝내자 아이들이 손뼉을 쳤다. 지난 7일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들을 치유하는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이하 드림마을)’ 수업 장면이다.
드림마을은 인구 3만명이 채 되지 않은 전북 무주, 그 안에서도 해발 460미터 높이 안성면에 들어서 있다. 본래 폐교이던 공간을 개조해 만든 청소년 수련원이다. 여성가족부가 전국 초·중·고 각 1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전국 단위 전수조사에서 게임이나 소셜미디어 등에 과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난 학생 중 희망자를 받아 치유서비스를 받게 한다. 이를테면 청소년용 ‘디지털 디톡스’ 시설이다.
드림마을에서 아이들은 인터넷을 일절 할 수 없다. 스마트폰은 입소할 때 본인 동의로 반납한다. 가정에는 유선전화로 연락한다. 이번 학생들은 11박 12일의 과정이지만, 경우에 따라 4주 가까이 입소하기도 한다. 배영태 원장은 “아이 중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자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들께서 반강제로 보내는 경우도 가끔 있다”면서 “입구에서 부모와 몇 시간을 실랑이 하는 경우도 있고, 매우 일부지만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드림마을에서 전에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한다. 수년간 받은 세뱃돈 450여만원을 게임 ‘배틀그라운드’ 아이템과 스킨에 썼다는 박모군은 “스마트폰 없이도 에너지를 쓸 수 있는 활동이 많아 좋았다”고 했다. 이어 “돌아가면 여기서 배운 명상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처음 할 때는 지겨운 느낌이었지만 계속하다 보니 자신을 비워내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저처럼 게임을 많이 하는 아빠에게도 같이 하자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단순히 인터넷을 잠깐 멀리한다 해서 치유가 되지는 않는다.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도루묵’이 될 가능성도 크다. 드림마을에서 무게를 두는 건 아이들 마음의 변화다. 아이들은 2주 과정의 경우 4~5번 이상 전문가들과 개인상담을 한다. 이군처럼 집단으로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상담내용은 인터넷 자체보다는 가정, 친구 관계에 관한 게 더 많다. 인터넷 과의존이란 결국 가정이나 대인관계 문제의 결과로 나타난 ‘증상’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가정환경 상 자녀에게 깊은 관심을 주기 어려울수록 아이들은 손쉽게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게임·SNS·유튜브 등에 몰입한다. 심용출 캠프운영부장은 “교육비용은 무료고 식비 정도만 받지만, 입소하는 아이 중 60~70%는 차상위계층이라 면제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드림마을은 아이들 교육과정 동안 부모에게 양육태도 검사와 비대면 교육을 한다. 배 원장은 “변화가 지속해서 일어나려면 가정에서의 변화도 같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무주=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