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송파 세모녀’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큰 딸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어머니는 일터를 잃어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선택한 건 죽음이었습니다. 이들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집세와 공과금으로 전 재산 70만원을 남기고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났을 즈음, 당시 세 모녀가 살던 동네를 찾아가 봤습니다. ‘혹시 교회가 세 모녀를 살릴 기회는 없었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 ‘이웃 사랑’은 교회의 큰 사명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동네 곳곳에 촘촘하게 들어선 크고 작은 교회들은 저마다 형편이 닿는 대로 지역 사회에 구제와 섬김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세 모녀 사건에 대해선 더 꼼꼼하게 살피지 못해 ‘벼랑 끝 인생’을 구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사건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선한 이른바 ‘송파 세모녀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송파 세모녀 사건이 불쑥 떠오른 건 얼마 전 실종됐다가 바닷속 차량 안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된 ‘조유나양 가족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일가족 모두가 세상과 이별한 것은 세 모녀 사건과 비슷합니다. 다른 점도 있습니다. 미성년자인 열살 짜리 유나 양이 사실상 부모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는 점입니다. 한쪽에서는 유나양 부모가 우울증과 공황장애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이 가족의 삶이 참 많이 버거웠구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하는 생각도 밀려 듭니다.
‘그럼에도 혹시 교회는 도울 일이 없었을까.’ 이번에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8일 광주광역시 남구 유나양 가족이 살던 아파트를 찾아가 봤습니다. 유나양 가족이 살던 집 우편함에는 우편물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발신인에는 ○○은행, △△카드, 국민건강보험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집 앞 현관문에는 신용보증재단과 법원, 보험사 등에서 보낸 우편물을 받아가라는 안내문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이 가족이 처한 급박한 사정을 훔쳐본 것 같았습니다.
발걸음을 돌리려는 데, 현관문 옆으로 분홍색 어린이용 자전거와 검정색 성인용 자전거가 덩그러니 서 있었습니다. 유나 양 가족이 타고 다녔을 자전거였겠지요. ‘주인 잃은 자전거구나’ 생각을 하니 통로를 벗어날 때까지 자전거에서 눈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나양 가족이 살던 동네를 한바퀴 돌아봤습니다. 아파트 단지 앞뒤로 십자가가 눈에 띄었습니다. 단지 입구 상가교회는 문을 닫은 지 꽤 오래된 것 같았습니다. 전화를 걸어보니 ‘없는 번호’라는 멘트가 나왔습니다. “사람이 드나든 지 꽤 된 것 같다”는 주민 얘기로 봐서는 코로나 여파 때문이 아닌가 짐작할 뿐입니다.
단지 건너편 도로 옆 상가 2층에도 교회가 보였습니다. 문이 닫혀 있어 전화를 걸자 여 전도사님과 통화가 이뤄졌습니다. 교회는 대면예배를 회복했는데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유나양 가족 얘기를 꺼내자 연신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옆 행정복지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유나양 가족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도 아니고, 특정한 지원을 요청한 적도 없었습니다.
유나양 가족이 마주한 비극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먹고사는 문제 너머의 일 같았습니다. 소망(또는 희망)의 부재라고 할까요. 유나양 부모는 어느 순간 살아갈 소망을 놓쳐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파트 상가교회는 문을 닫았지만, 교회 입구 간판에는 아직도 선명한 문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유나양 가족은 이 땅의 교회가 할 일을 새삼 되새겨준 것 같습니다. 지친 영혼을 찾아 구석구석 복음으로 소망을 심어주는 일입니다.
광주=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