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 종사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포섭해 보호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보호 필요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사용종속 관계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근로기준법상 해고의 제한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종속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법원이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 드라이버(운전기사)를 근로자로 본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취소하라고 한 판결 중 일부다. 재판부는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보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별도 입법이나 법 개정 없이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순 없다고 봤다. 명시적인 직접 계약이 없었고, 구체적 업무 내용을 회사가 정하지 않았으며, 드라이버가 타다에 전속된 것도 아니었다는 이유에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전날 쏘카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타다 드라이버였던 A씨는 2020년 1월 협력업체와 ‘타다 운전원 위탁계약’을 맺고 타다 차량을 운행했다. 하지만 쏘카의 자회사 VCNC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으로 유예기간 이후부터 운영이 불가능해지자 같은 해 3월 앱을 통해 서비스 중단을 공지했다. A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배차 중단 통보는 부당해고”라고 구제신청을 해 기각됐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선 판단을 뒤집어 부당해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쏘카는 이에 불복해 부당해고 구제 판정을 취소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공유경제 사회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플랫폼 종사자의 법적 지위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플랫폼 종사자는 대부분 개인사업자로 간주돼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법원은 프리랜서 드라이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쏘카와 A씨 사이에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었고, 쏘카가 협력업체들의 프리랜서 드라이버 모집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쏘카가 프리랜서 드라이버들의 구체적 업무 내용을 지정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출발지와 목적지 등 구체적 업무 내용은 이용자의 호출에 의해 결정되는데, 오히려 호출을 수락할지에 대한 결정권은 드라이버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드라이버가 타다앱이 안내하는 대기장소에서 대기하도록 요구 받은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운행 건수나 거리와 상관없이 시간에 비례해 수수료를 지급 받았기 때문에 호출이 이뤄지지 않는 지역으로 이동해 호출을 회피하면서 운전용역대금은 수령하는 어뷰징 행위를 할 유인이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종사자 측에서 근로자성의 근거로 제시한 업무 매뉴얼과 복장 가이드에 대해서도 법원은 구속력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VCNC가 협력업체에 제공한 업무매뉴얼은 서비스 표준화를 위한 것으로 드라이버에 대한 복무규정은 아니라는 취지다. 복장점검 역시 초기 이례적 사례라고 봤다.
프리랜서 드라이버의 전속성에 대해서도 법원은 “쏘카가 운전용역 제공을 원치 않는 드라이버에게 강제하거나 제재를 가할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드라이버들에게 겸업이 금지되지 않았고, 일정기간 계속적으로 운전할 것이 요구되지 않았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판결문 말미에서 법원은 플랫폼 종사자 보호와 관련된 부분을 따로 짚었다. 재판부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노동에 종사하는 자가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종속적 노동자와 독립계약자 사이에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전제하며 플랫폼 노동 종사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한 계약의 일방적 종료 등에 대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별도 입법이나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규율하는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