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의 구원투수 토레스 가격은 T5의 경우 2740만원, T7은 3020만원부터 시작한다. 최근 시승했던 신차는 대부분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턱없이 값을 비싸게 책정해서 어차피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와 달리 토레스는 그림의 떡은 아니었다.
지난 5일 토레스를 마주했다. 강인하고 웅장했다.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투싼이나 스포티지보다 조금 크고, 중형 SUV 쏘렌토보다 조금 작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주간주행등이다. 국자 모양이었다. 북두칠성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북두칠성은 길 잃은 여행자가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돕는다는 점에서 어울렸다. 테일게이트(뒷문)에 스페어 타이어 모양의 장식물도 달았다. 트렁크 공간은 넉넉하다. 뒷좌석을 앞으로 접으면 1662ℓ까지 확장된다.
펜더(바퀴 윗부분)는 근육질 남성의 어깨처럼 부풀어 있다. 무쏘와 코란도가 그랬다. 정용원 쌍용차 법정관리인은 “‘SUV 명가’라는 쌍용차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운전석에 올라탔다. 문 아래 수납공간에 비상상황 발생시 탈출용으로 활용하는 망치 모양의 공구가 있었다. 내 차가 물에 빠졌을 때 이걸로 안전벨트를 자르고 창문을 깨서 탈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공구는 적잖은 이들의 이런 상상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대시보드는 다른 차량에 비해 확실히 낮았다. 전면 시야가 탁 트였다. 토레스는 운전자의 시야 확보를 위해 주행 정보를 전면 유리에 보여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뺐다고 한다. 대시보드는 나무 디자인을 적용했다. 필름인 게 티가 나서 고급스럽진 않았다.
중앙에 디스플레이 2개를 배치했다. 이강 쌍용차 디자인센터 상무는 토레스 미디어 출시행사에서 ‘직관’이라는 단어를 4번이나 썼다. 첫 번째가 통합 디스플레이를 설명할 때였다. 여기저기 달려있는 버튼을 디스플레이에 모아 직관적으로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게 했다. 내비게이션이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인포콘 AVN을 배치했다. 그 아래 에어컨, 열선, 드라이브 모드 등을 조작하는 디지털 통합 컨트롤 패널을 뒀다. 한 참석자가 “왜 둘로 나눴느냐”고 물었다. 이 때 두 번째 ‘직관’을 말했다. 이 상무는 “다른 기능을 활성화할 때 메인스크린의 직관성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중앙 디스플레이 아래에 있는 보관함에 스마트폰을 올려두면 자동으로 충전이 된다. 스마트폰 케이스는 벗겨야 한다.
터치가 아닌 버튼은 비상등 단 1개다. 운전대를 잡은 왼손 근처에도 손가락만 까딱해서 비상등을 켤 수 있다. 주행 중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쉽게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점차 사라져 가는 운전 에티켓에도 신경을 쓴 것이었을까. 전통식 기어를 적용했다. 험로 주행, 주차 등 빠르게 기어를 사용해야 할 때 버튼이나 다이얼식 기어보다 직관적(세 번째 직관)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행할 차례다. 쌍용차에서 준비한 토레스 33대가 차례차례 출발했다. 신호대기 중에 옆 차선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더니 토레스 차량 외관을 유심히 살폈다. 쌍용차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차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천 영종도에서 연수구까지 왕복 약 86㎞를 주행했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속도가 빠르게 붙는 편은 아니었다. 엔진 회전수를 끌어올리면서 소음이 났지만 거슬리지 않았다.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28.6㎏·m의 성능을 발휘한다. 정통 SUV답게 주행감이 묵직했다. 꽤 오랫동안 시속 100㎞ 정도의 속도를 유지했는데 승차감은 매우 평온했다. 방지턱을 넘을 때 덜컹거림은 있는 편이다. 오프로드를 달리면 엉덩이에 크고 작은 충격이 느껴질 것 같았다.
동승자(36)는 “어떻게 이 가격에 이런 품질과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냐”며 놀라워했다. 그는 K5를 10년 째 몰고 있어 조만간 차를 교체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토레스를 살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쌍용’ 브랜드가 별로여서다.
토레스의 전면부 그릴은 짧은 세로 격자모형의 기둥처럼 곧게 뻗어 있다. 이 상무는 회의 때 이 디자인을 보자마자 ‘무너지지 않는 성벽’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마지막 ‘직관’ 발언을 했다. “디자이너의 직관으로 ‘이거다. 이걸로 하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업계는 긴 고난의 세월동안 허물어진 ‘SUV 명가’ 쌍용차의 브랜드를 토레스가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관심이 컸다. 토레스는 사전 계약에서 이미 목표 판매량의 2배 수준인 3만대를 돌파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