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와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이 절대 먹으면 안 되는 약물이 있다. 바로 여드름 치료제다. 주성분인 ‘이소트레티노인’이 태아 기형을 유발한다.
실제 이소트레티노인에 노출된 여성의 기형아 출산 위험이 비노출군에 비해 최대 3.7배 높게 나타났다.
특히 국내에선 이소트레티노인 성분의 여드름 치료제가 ‘증상이 가벼운 여드름이나 피지 조절’에도 처방되는 등 남용되는 경향이 있어 가임기 여성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소트레티노인 성분 약을 사용했다면 최소 4주 이후 임신을 시도하도록 권고된다.
인제대 일산백병원 산부인과 한정열 교수팀은 이소트레티노인 성분 여드름약을 복용한 임신부 기형 위험 연구 논문들을 종합해 메타 분석한 결과를 대한산부인과학회 국제 학술지(Obstetrics & Gynecology Science) 최근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미국 연구논문 5편, 캐나다 2편, 독일 1편, 네덜란드 1편, 공동 연구(이스라엘, 이탈리아, 캐나다) 1편 등 총 10편을 분석했다. 이 연구에서는 이소트레티노인에 노출된 임신부 2783명이 포함됐다.
분석 결과 이소트레티노인에 노출된 여성의 기형아 출산 위험이 비노출군에 비교해 최대 3.76배까지 높게 나왔다. 이소트레티노인을 복용한 임신부 중 380명이 출산, 15%(59명)가 기형아로 확인됐다.
주요 기형으로는 두개골·얼굴 기형, 중추 신경계 손상, 심장 기형, 무지외반증, 얼굴·목 기형, 손가락 다지증 등 이었다.
분석 연도에 따라 기형 위험도 차이가 났다. 2006년 이전 연구에서는 기형 위험이 3.76배로 높았던 반면, 2006년 이후 연구에서는 1.04배로 위험도가 현저히 줄었다.
한 교수는 6일 “예전에 비해 이소트레티노인에 의한 여드름 치료가 표준화되어 저용량으로도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며 “여드름 치료제 용량과 기간이 전체적으로 줄어, 태아 기형 출산 위험도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2006년 이전에는 이소트레티노인 하루 복용량이 최대 87.3mg이었으나, 2006년 이후에는 43.7mg으로 줄었다. 그 이후로 많은 다른 연구에서 하루 0.25~0.5mg/kg의 저용량 투여로도 효능이 확인됐다.
문제는 이소트레티노인을 복용한 여성들의 낙태율이다. 이소트레티노인을 복용한 임산부의 80%가 낙태로 이어졌다. 이 중 65%가 본인이 선택해 낙태한 것으로 조사됐다.
캐나다 연구에서는 1984년에서 2002년 사이 이소트레티노인을 복용한 13~45세 여성 8609명 중 90명이 임신해 그중 76명(84%)이 임신 중절을 선택했다. 미국 연구에서도 이소트레티노인을 복용한 임신 여성의 72%가 임신을 중단했다.
우리나라도 큰 차이가 없다. 마더세이프전문상담센터 자료에 따르면 2010~2021년 이소트레티노인을 복용한 임신 여성들의 상담이 1500건 이상 진행됐다. 이들 중 50% 이상은 임신 중절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임신부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와 의료인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9년 6월부터 임신 예방 프로그램인 ‘의약품 위해성 관리계획(Risk Management Plan)’을 국내에서 적용하고 있으나 여전히 임신부의 이소트레티노인 노출 위험이 높다.
이런 현상은 여드름 치료제의 남용이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식약처에서 승인한 이소트레티노인 성분은 결절성 여드름이나 낭포성 여드름 같이 심한 여드름에 적용된다. 다른 1차 약으로 치료 효과가 없는 때 처방할 수 있도록 제한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경미한 여드름이나 피지 조절을 위해서도 사용할 정도로 남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교수는 “이소트레티노인은 신경능 세포의 활동을 억제하고 세포 간 상호작용을 방해해 기형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뇌, 얼굴, 구개, 심장, 척수, 귀, 흉선의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
또 “이소트레티노인 복용 중 임신한 여성들은 기형 위험도가 높아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임신을 중단하는 여성들이 많다. 이런 여성들은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과 검사를 통해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이소트레티노인 복용 중단 후 최소 4주가 지나고 임신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금기 기간에 이소트레티노인에 노출된 여성은 비영리단체인 마더세이프전문상담센터(1588-7309)로 연락하면 전문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