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에서 만난 권 목사는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해 “인생의 꿈도 소망도 없이 학교에서 ‘쓰레기’라고 불렸던 아이”라고 회상했다. 보살핌과 사랑이 결핍된 자리에 불안정과 폭력이 채워졌던 가정환경은 그를 방황의 길로 내몰았다. 생모는 그가 세 살배기 때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갔고 권 목사는 그 후 3명의 새엄마를 더 맞아야 했다.
태권도 공인 5단에 특전사 출신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태권도장 관장, 이발사, 고물상 주인, 다단계 판매업자, 스님, 철학관 운영자 등 정착 대신 유목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덕분에 그는 때로는 할머니, 또 때로는 숙모 손에서 자라야 했다. 자존감을 키우기에 열악하기만 한 환경에 묻혀 있었던 그에게 초등학생 시절 처음 다니게 된 교회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경험하게 해줬다. 또래 친구들과의 일탈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교회는 그가 벼랑 끝에 설 때마다 정서적 울타리가 돼줬다. 그리고 고교 2학년 때 한동대에서 열린 청소년 연합수련회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났다.
“4박 5일 동안의 수련회에서 같이 간 친구들은 눈물 흘리며 찬양하고 방언이 터지는데 저는 이상하게만 보이고 두렵게 느껴져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날 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휘몰아쳤습니다. 애정결핍으로 가득 찼던 제게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진 겁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기쁨도 잠시, 큰 환란이 찾아왔다. 대입 수능 시험을 2개월여 남기고 있던 그가 차를 타고 학교에 가다 18t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오른쪽 다리가 완전히 으스러진 권 목사는 수술대에 올라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아이고 오희야. 니는 대가리도 나쁜데 이제 막노동도 못 하겠다’고... 솔직히 원망스러웠죠. 땅끝까지 뛰어다니며 하나님 일하겠다고 서원했는데 다리 한 쪽이 망가지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고백이 바뀌더라고요. 어차피 제게 다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인데 이 다리 잃는다고 해도 하나님 사랑하는 게 변할 순 없겠다고, 이 다리 덕분에 하나님 이야기를 더 잘 전할 수 있겠다고요.”
부산 고신대에서 선교학을 공부한 권 목사는 전도사 시절 필리핀에서 1년 간 성도 20여명의 중고등부 사역을 80여명으로 부흥시키면서 청소년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마음에 새겼다. 귀국 후엔 포항과 부산에서의 중고등부 사역을 거쳐 제주에 둥지를 텄다. 그는 “제주가 이혼율, 우울증 지수 등이 가장 높다는 얘길 듣고 아픔, 슬픔 많은 아이들과 공감을 나누고 딱 한 달란트 밖에 재능이 없더라도 얼마나 그게 귀한 지 알려주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첫걸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다음세대를 위한 건강한 공동체 설립을 꿈꾸며 2017년 학생 5명, 교사 1명으로 시작했지만 ‘당근마켓’에 중고물품을 팔아 교사 급여를 줘야할 정도로 재정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권 목사는 끊임없이 기독교적 세계관과 교육철학을 고민하고 비전을 제시했다. 그 결과 제주도 아이들을 한마을로 보고 그들을 위해 멋진 숲을 만들어주기로 마음먹은 지역 내 교회들이 연합해 법인을 만드는 기적을 이끌어냈다. 2020년 ‘사회적협동조합 제주교육선교공동체 나무와 숲’이라는 기다란 이름으로 나무와숲학교가 출발선에 선 것이다. 지금은 초등 중등 고등학교 과정을 통합운영하며 학생 46명을 양육하고 있다.
권 목사는 “5년 차를 맞으면서 지역 내 일반 학생들과의 연대를 구상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아이들이 더 큰 숲을 이룬다면 제주도를 더 가치 있게 성장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