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후 추가 발굴 조사에 나서 반경 20m 내 갯벌에서 올해 5월 용머리 장식기와의 나머지 상단을 찾아냈고,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취두 상단에 부착하는 칼자루 모양의 장식품인 검파(劍把)와 함께 상·하단이 모두 갖춰진 다른 취두 유물을 발굴했다. 두 취두는 쌍을 이루는 것으로, 이로써 조선 전기에 건물 용마루 양쪽 끝에 올리는 취두 전체가 온전한 모습 그대로 처음으로 확인이 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9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취두와 검파 등 발굴 성과를 언론에 공개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김동훈 연구관은 “조선 후기의 취두는 많이 남아 있지만 조선 전기의 취두는 양주 회암사지 등에서 파편 상태로만 나와 있는 게 전부였다. 이번 발굴로 조선 전기에 왕실 건축물의 용마루 양끝을 마감하는 취두의 온전한 형태를 처음으로 확인하게 됐다. 마루장식기와연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루장식 기와는 삼국시대에서 고려 후기까지는 새꼬리 모양의 치미를 사용하다가 고려 말부터 용머리 모양의 취두 형태가 등장했다.
발굴된 취두는 왕실용인만큼 무늬가 생생하면서 정교하다. 취두 하단은 그 자체가 용의 머리 모양의 형상을 하고 있고 취두 상단에는 작은 용이 새겨져 있다. 상하단을 합쳐 길치 103㎝, 무게 120㎏이나 된다. 취두는 용이 용마루를 삼키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용마루가 밀려나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면서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는 장식효과, 사악한 기운을 쫓는 벽사의 기능을 한다. 검파는 길이 40.5㎝, 폭 16㎝, 두께 7㎝의 칼 손잡이 모양으로 앞뒷면에 2단으로 구름무늬가 표현돼 있다. 검파는 빗물이 취두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된다.
김 연구관은 “서울에서 기와를 구운 뒤 충남 이남의 왕실 관련 건물에 얹으려고 싣고 가던 중 배가 난파해 취두와 검파가 갯벌에 박힌 듯하다”고 추정했다. 충남 이남에는 왕실 건축물로 태조 어진을 모신 전주의 경기전 등이 있다.
취두와 검파는 갯벌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화재 등으로 소실되지 않고 역설적으로 600년 넘게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또 취두의 무게가 무거운 점도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보인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