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북한군에 의해 서해상에서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유족이 대통령기록관에 정부의 사건 대응 기록들을 공개 청구했지만 대통령기록관이 불응했다. 최대한 찾아 봤으나 ‘일반기록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목록조차 검색되지 않아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애초 대통령기록관의 공개 결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봤던 유족은 대통령기록물 공개를 위한 여야의 합의를 촉구하는 한편 행정소송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법조계는 서울중앙지검이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만큼 수사기관의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본다.
대통령기록관은 이씨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지난 22일 “우리 기관은 귀하의 정보공개 청구에 따를 수 없음”을 통지했다고 유족 측이 23일 밝혔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지정기록물에 관해 “목록까지 ‘지정’돼 아예 검색할 수 없다”는 취지로 유족 측에 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기록관은 그러면서 국회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 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가 있어야 대통령지정기록물의 공개가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한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닌 일반기록물에 대해서는 “검색된 것이 없다”고 회신했다. 유족 측은 당연한 결과로 인식하고 있다. 유족 측이 지난해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피고인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은 관련 기록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인 지난달 9일 서울고법에서 변론기일이 열렸는데, 이때 피고 측은 법원으로부터 기록을 받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다. 유족 이래진씨에 따르면 이 기록은 분량이 많지도 않고 A4 용지 1페이지 분량이었다 한다.
유족 측이 공개되길 희망하는 자료는 2020년 9월 22일 오후 6시36분부터 같은 날 오후 10시11분까지 청와대가 국방부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로부터 받은 보고 관련 서류들이다. 유족 측은 문 전 대통령이 2020년 9월 28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아쉽게 부각되는 것은 남북 간의 군사통신선이 막혀 있는 현실” “군사통신선을 통해 연락과 소통이 이뤄져야 남북의 국민이나 선박이 해상에서 표류할 경우에도 구조 협력을 원활히 할 수 있다”라고 한 대통령의 진술에 대해서도 관련 기록 공개를 촉구했었다. 해당 발언에 앞서 청와대가 국방부,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이 있는지 살펴 달라는 것이었다.
유족 측은 1심에서 승소 판결을 얻었고, 청와대는 항소했지만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인 지난 16일 항소를 취하했다. 청와대와 해양경찰청, 국방부는 ‘해경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 ‘군사기밀에 해당한다’는 이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악영향’ 이유, ‘주변국 외교 문제 발생 가능성’ 이유 등으로 공개를 꺼려왔다고 유족 측이 전했다. 청와대 측은 법정에서 “어차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보호될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기도 했다.
대통령기록관이 관련 정보의 부존재나 확인불가 사실을 밝히면서, 법조계는 검찰이 고등법원장의 영장을 통해 대통령지정기록물에 접근을 시도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유족의 고발 핵심은 결국 이대준씨의 사망을 ‘월북’으로 몰고 간 범정부적 대응이 있었는지 실체를 파악해 달라는 것이다. 해경과 국방부는 1년여 전 수사결과 발표 당시 청와대의 답변 지침이 있었다고 최근 밝혔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지침과 관련된 청와대 관계자들의 소환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해당 관계자들로부터 대통령 보고 지시 여부가 있었는지까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검찰의 향후 수사 방향을 짚었다.
또다른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지정기록물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가능성이 있겠지만, 서두를 일은 아니라고 예상했다. 그는 “지침 자체가 문서로 내려왔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문제가 될 정도면 구두 지시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