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희귀질환자 52% “새 정부 ‘신약 급여 등재기간 2개월 단축’ 미흡”

입력 2022-06-22 12:18

윤석열 정부는 항암제와 중증·희귀질환 신약의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건강보험 신속등재를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110개 국정과제 가운데 66번째로 포함돼 해당 환자와 가족들의 기대가 어느 때 보다 크다.

실제 암과 중증·희귀질환자들의 95% 이상은 국정과제로 추진에 대해 찬성하고 85% 이상은 만족하고 기대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신약의 급여 등재 기간을 2개월 단축하는 정부의 추진 계획에 대해서는 절반 이상이 미흡하다고 답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내 허가를 받은 항암제와 중증·희귀질환 치료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 적정성 평가에 4개월, 건강보험공단-제약사 간 약가 협상 2개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 및 고시 1개월 등 약 7개월의 기간을 거쳐 환자들에게 사용된다.
하지만 실제 건보 급여 등재까지 1~2년 이상 소요돼 신약 사용이 절실한 환자들은 신체적·경제적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현재 심평원 평가와 건보공단 약가 협상 단계에서 각각 1개월씩 행정적 절차를 줄여 전체 2개월 정도 급여 등재 기간을 단축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환자 중심 항암제·중증·희귀질환 혁신 신약,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의 환자 대상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이번 조사는 암(100명), 희귀질환(115명), 기타 중증 만성질환(35명)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62.8%(157명)가 치료 과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으로 ‘경제적 요인’을 꼽았다. 특히 44.0%(110명)가 약값 부담 등 이유로 실제 치료를 중단한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적절한 치료제가 있는데도 건보 급여 등재가 늦어지는 바람에 비싼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중단·포기하는 환자가 생기는 것이다.
새 정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2개월 단축하는 방향으로 국정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흡족하다’(23.6%)는 의견보다 ‘미흡하다’(52.4%)는 평가가 더 많았다.
응답자들은 신약이 식약처 허가를 받은 후 보건복지부에서 건강보험 급여 승인을 받기까지 적절한 소요 기간으로 ‘3개월 이내’(32.8%), ‘허가 즉시 0일’(29.2%), ‘6개월 이내’(14.0%), ‘12개월 이내’(8.8%) 등의 순으로 답했다. 특히 대체 약물이 없어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 치료제의 경우에는 허가와 동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새로운 신속등재 제도 도입에 대해 응답자의 96.4%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항암제와 희귀질환 혁신 신약의 환자 접근성을 높이려는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는 심포지엄에서 ‘항암제 혁신신약 효과와 현황’을 주제로 발표하고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항암제, 혁신 신약의 환자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중증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선급여-후평가’ 제도 시범 도입, 사전승인제도 심사 요건 현실화와 제도 개선, 급여 등재 기간의 실효성 있는 단축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삼성서울병원 심장뇌혈관병원 전은석 교수는 희귀질환인 심장 아밀로이드증의 국내 현황과 치료 현실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다. 특히 심장 아밀로이드증의 유일한 치료제인 ‘빈다맥스’는 2020년 국내에서 사용 허가를 받았지만 비싼 약가로 인해 2년째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이 언제 치료받을 수 있을지 기약 없는 현실을 설명했다.
전 교수는 “최소한 대체 치료법이 없는 희귀질환의 치료제에 대해서는 치료제 허가와 동시에 빠르게 환자들이 치료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마련과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중앙대 약대 이종혁 교수는 국내 약가제도 혜택이 항암제에 집중돼 있어 희귀질환 치료제의 보장성 향상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제도 내에서 해결되지 않는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재정 외의 기금 조성을 통해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