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 윤리위원회의 ‘성상납 의혹 관련 증거인멸교사 사건’ 관련 징계 심의를 하루 앞두고 “전쟁보다 어려운 게 정치싸움”이라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21일 밤 페이스북에 “결국 그에게도 포에니 전쟁보다 어려운 게 원로원 내의 정치 싸움이었던 것 아니었나”라며 “망치와 모루도 전장에서나 쓰이는 것이지 안에 들어오면 뒤에서 찌르고 머리채 잡는 거 아니겠냐”고 적었다.
이를 두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카르타고의 명장이자 ‘포에니 전쟁’의 영웅인 한니발 장군의 처지에 빗댔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22일 기자들과 만나 “한니발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그’는 한니발의 맞수였던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다.
기원전 236년에 태어난 스키피오는 어린 나이에 2차 포에니 전쟁에 참전해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를 격파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한 그는 30세 때 최연소 집정관(행정 최고 책임자)에 올랐고 현재 이 대표의 나이인 37세 때 로마 최고 명예직인 감찰관이 됐다. 15년간 원로원에서 ‘제1인자’로 불리며 정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내부에서 ‘대(大) 카토’ 일파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스키피오는 ‘대 카토’일파의 음모로 동생이 쓴 500탈렌트의 사용처를 추궁 받는 등 고발을 당했고 수뢰 혐의로 탄핵됐다. 결국 원로원을 떠난 스키피오는 2년간 유배 생활을 하다 53세 일기로 사망했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22일 오후 7시 국회 본관에서 열린다. 이 대표의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해 ‘품위 유지 의무 위반’ 징계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대표가 의혹 무마를 위해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을 통해 증거인멸을 시도했는지, 이 대표가 직접 개입했는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와 김 실장은 윤리위에 출석해 적극 소명한다는 입장이다.
윤리위 징계는 제명·탈당권유·당원권 정지·경고 4가지로 나뉜다. 9명의 위원 중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위원 과반이 동의하면 징계를 결정할 수 있다.
제명은 위원회 의결 후 최고위 의결을 거쳐야 확정되지만, 나머지 3가지는 윤리위 결정 그 자체로 효력이 발생한다. 탈당 권유는 10일 이내에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별도 의결 절차 없이 곧바로 제명 처분된다. 당원권 정지는 최소 1개월에서 최장 3년이다.
가장 약한 조치는 경고지만 이 역시 리더십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으로든 징계 결론이 나오면 이 대표에게는 악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날 이 대표는 BBS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윤리위가 굉장히 이례적으로 익명으로 많은 말을 하고 있는데 사실 무슨 의도인지 궁금하다”며 “미리 속단해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소수 위원이 계속 인터뷰하는 것은 자기 뜻을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표는 처음 의혹을 제기했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호텔에 들어가는 이 대표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공개를 예고하자 “그런 것 있으면 다 공개하라”고 응수했다. 그는 “그때 제가 거기 숙박했다는 건 이미 이야기했는데 그게 (의혹과) 무슨 상관인지 정확하게 설명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단순히 무슨 CCTV를 공개한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