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위원회가 경찰 통제안을 발표한 21일 저녁 정부는 경찰 치안감 보직 인사를 단행했다. 그런데 인사가 번복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경찰청은 처음에는 ‘실무자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가, 1시간쯤 지나 “행안부의 번복이 있었다”고 실토했다. 애초 행안부에서 통보한 보직 인사 안이 갑작스럽게 변경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행안부의 경찰 통제 움직임과 이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시점에 일어난 일이어서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경찰청은 21일 오후 7시쯤 치안감 보직 인사를 발표했다. 하지만 약 2시간 30분 뒤인 오후 9시 30분쯤 이미 발표한 보직 인사를 번복했다. 경찰청은 “여러 인사안을 가지고 논의하던 중 이전에 협의 중이던 인사안을 실무자가 실수로 잘못 배포했다”며 “번복된 인사 안이 대통령에 결재받은 인사 안이다. 제대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행안부의 관여는 전혀 없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 조직 내부에선 ‘실무자 실수’라는 해명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경찰청 관계자는 “실무자 실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보직이 변경된 이들의 지역 연고 등을 두고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정권 초반 행안부가 이례적으로 경찰 고위직 인사를 반복 단행하면서 ‘조직 길들이기’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실무자 실수’라는 해명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커지자 경찰청은 약 1시간 뒤 보직 인사 내용이 변경된 사유를 뒤늦게 실토했다. 실무자 실수가 아니라 행안부에서 인사 안을 번복했던 것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행안부에서 최종본으로 통보를 받아 내부망에 게시했는데, 다른 안이 최종본이라고 전달받았다”며 “경찰청 실무자의 실수는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 내부에서는 “경찰이 스스로 행안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한탄이 나왔다. 행안부가 인사를 번복했는데도 이를 ‘경찰 실무자의 실수’라고 설명한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행안부를 통한 인사 개입이 뒤늦게 이뤄진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벌써부터 행안부가 이런식으로 인사를 쥐락펴락 하는데, 누가 정권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수사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보직 인사가 번복된 대상자는 김준철 광주경찰청장(서울경찰청 공공안전차장→경찰청 생활안전국장), 정용근 충북경찰청장(중앙경찰학교장→경찰청 교통국장), 최주원 경찰청 국수본 과학수사관리관(경찰청 국수본 사이버수사국장→경찰청 국수본 수사기획조정관), 윤승영 충남경찰청 자치경찰부장(경찰청 국수본 수사기획조정관→경찰청 국수본 수사국장), 이명교 서울경찰청 자치경찰차장(첫 명단에 없었음→중앙경찰학교장), 김수영 경기남부경찰청 분당경찰서장(경찰청 생활안전국장→서울경찰청 공공안전차장), 김학관 경찰청 기획조정관(경찰청 교통국장→서울경찰청 자치경찰차장)이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