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거지가 될 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조급해져 매매를 반복하다 돈을 다 잃었습니다.”
암호화폐 투자로 8000만원 손실을 본 직장인 이모(29)씨는 최근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돈 생각에 일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씨는 암호화폐 투자 붐이 한창이던 2020년 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현물 거래’를 했지만 곧 해외 거래소로 넘어가 선물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해외 거래소엔 증거금을 담보로 최대 125배 수익을 얻을 수 있게 설계된 레버리지 상품이 있었다. 이씨는 21일 “50배, 100배를 걸고 베팅을 했다가 촉이 맞는 날에는 수십배씩 이익이 나니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선물 거래로 손해가 점차 불어나다 최근 암호화폐 가격 급락에 이씨의 손실액은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이 됐다. 투자 전 모아뒀던 3000만원과 대출 5000만원을 모두 잃었다. 그는 “300만원 남짓 월급을 가지고 어느 세월에 집을 사겠냐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몇 분 만에 큰돈을 벌었다는 ‘인증 글’을 보고 조바심이 강해진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월급 들어올 때마다 투자금 생각 나”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로 주식과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면서 자본 투자에 나섰던 MZ세대의 비명이 커지고 있다. ‘파이어족(조기은퇴 희망족)이 되겠다’ ‘벼락거지가 되지 않겠다’며 투자에 나섰지만 예상치 못했던 자산 가격의 하락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이들은 특히 저금리에 익숙해져 있어 금리가 오르는 현상은 낯설기만 하다. 투자 손실과 대출 이자 부담에 우울함 등 정신적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다른 직장인 박모(33)씨는 결혼 자금을 주식과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날릴 위기에 처했다. 신혼생활을 더 여유 있게 시작하고 싶어 주식에 1500만원, 암호화폐에 500만원을 넣었지만 현재 수익률은 -50% 이하다. 그는 “이 정도 하락장이 펼쳐지니 오히려 자포자기 상태”라며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투자금이 생각나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럼에도 아직 투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틈이 날 때마다 주식 커뮤니티에 들어가고 암호화폐 가격을 확인한다. 그는 “새로운 수익을 얻어 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면서 “암호화폐는 혹시라도 상장 폐지가 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김모(28)씨는 NFT(대체불가토큰) 기술과 연관된 투자로 고수익을 노렸지만 연계된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면서 투자금을 다 날릴 판이다. 그는 지난 4월 ‘운동하며 돈벌기’ 즉 M2E(Move To Earn) 앱인 ‘스테픈’을 시작했다. 스테픈은 NFT 신발을 구매하고 가상으로 장착한 뒤 GPS를 켜고 걷거나 뛰는 만큼 보상을 받는 방식이다. 보상은 암호화폐로 주어진다.
김씨는 수백만원을 주고 NFT 신발을 샀지만 보상으로 받는 암호화폐는 지난달 테라·루나 사태 이후 계속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NFT 신발 가격도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은 김씨는 “대출을 갚기 위해 가족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대출 이자 부담에 우울하고 불안”
‘영끌’로 집을 마련한 직장인은 대출 이자 부담에 우울감까지 표출하고 있다. 직장인 정모(28)씨는 아직 상환을 시작도 하지 않은 대출 이자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청약을 통해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고 내후년 입주를 앞두고 있다. 분양가 7억5000만원 가운데 5억여원을 대출로 충당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4.5%로 계산하면 월 원리금 상환액은 200만원가량이다. 그렇지만 금리가 지금처럼 계속 오르면 실제 상환 시점 이자는 더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씨는 “청약 때만 해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믿었고 저금리가 이어져 큰 걱정이 없었는데 최근 물가 상승과 금리 급등세로 이 모든 믿음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MZ세대 일부는 주변의 조롱 섞인 시선 탓에 마음이 더 위축된다고 말한다. 지난해부터 빚을 내 해외주식 투자를 하다 2000만원가량 손해를 봤다는 이모(29)씨는 ‘네가 지나친 욕심을 부렸다’ ‘도박처럼 주식 투자를 한 네 탓’이라는 말을 들을 때 주먹으로 맞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그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아직 투자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 통한 투자 신중해야”
전문가들은 윗세대와의 자산 격차 좌절감에 투자에 나섰던 MZ세대가 또 다시 좌절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금 대출을 통한 투자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안적 소득원 마련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 주식이나 코인과 같은 위험자산의 포지션을 늘려가는 것은 합리적인 투자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위험자산의 포지션을 늘려야 하는 타이밍은 분명히 올 것”이라며 “MZ세대는 살아갈 날이 많으므로 여러 종류의 자산시장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손실 복구 욕구 극대화… 심리치료 받아야”
장효강(사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강원센터장은 “팬데믹 이전에는 내담자 95%가 온라인 도박 중독자였고 나머지 5%도 오프라인 도박중독자였는데, 2년새 주식·코인 문제로 상담을 오는 이들의 비중이 전체의 20%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이들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에 중독돼 불안감이 극대화된 이들이다. 평소 직장,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보고 듣는 허세 섞인 자랑을 현실적으로 걸러 해석하지 못한 채 “나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집착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손실 복구 욕구가 극대화된 이들이다. 특히 주식·코인은 도박과 달리 “운이 아닌 실력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심리로 끊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장 센터장은 지적했다.
장 센터장은 주식·코인으로 손실을 본 이들이 가장 먼저 부모님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현 상황을 상세하게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가 만난 내담자들은 대부분 혼자서 이 문제를 안고 가려 한다고 한다. 그는 “현실적으로 주식이나 코인으로 돈을 버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특히 지금과 같은 하락장에서는 더 힘들다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인지시켜 줄 주변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결국 이런 종류의 우울감과 불안감의 근원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며 “도박 문제를 다루는 기관에서는 주식·코인과 도박의 중독 위험성을 사실상 동일한 수준으로 평가한다. 당분간 주식 코인 등을 내려놓고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 것이 심리 회복의 첫 걸음”이라고 전했다.
김지훈 임송수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