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원자재 가격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중에, 이를 구입해 원사업자에게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상당수는 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 하도급법에는 재료비가 상승할 경우 수급사업자가 원사업자에게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고, 원사업자는 조정 협의에 성실히 임할 의무를 부여하는, 이른바 납품단가 조정협의제(이하 ‘협의제’)가 마련돼 있다. 원사업자에게 직접 단가 조정을 요청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수급사업자가 속한 협동조합을 통한 대행 협상도 가능하고, ‘납품단가 조정 신고센터’를 통한 익명의 신고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달 16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실태점검 결과 발표에 의하면 수급사업자 상당수가 ‘협의제’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원사업자로부터 거래를 단절당할 우려 등으로 원사업자에게 단가 조정을 요청하기 사실상 어렵다고 답했다.
중소기업계는 이에 재료비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자동으로 반영토록 하는 이른바 납품단가연동제(이하 ‘연동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동제의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사업자의 가격결정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인만큼 신중해야 한다. ‘시장경제’를 ‘가격경제’라고도 부르듯이, 가격은 시장경제체제에서 수요자와 공급자의 선택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추적이고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비교법적으로 많은 선진국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지배적 지위(시장을 독점하는 지위)에 이르지 않는 사업자의 행위는 경쟁제한성을 낮게 보아 공법적 규율이 아닌 민사적 규율대상으로 취급한다. 이를 경쟁당국이 개입해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로 규제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 외에 많지 않다. 이는 우리의 하도급거래관계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기업의 조직 내 거래에 준하는 소규모의 장기적‧계속적 거래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데에 기인한다. 소수의 원사업자와 절대다수의 수급사업자의 일대다(1:多) 관계에서 대체거래선을 찾기 힘든 수급사업자는 원사업자가 다소 불리한 거래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밖에 계약문화의 성숙도, 사적구제수단의 확보 수준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관련 규제들도 어디까지나 사업자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이지, 특정한 거래조건 자체를 유도하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점에서 연동제는 일반적인 거래상 지위 남용 규제와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가격의 형성과정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동제는 당사자들이 납품단가를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최저가격을 정책적으로 보장해주자는 취지다. 이와 같은 규제는 당장에는 수급사업자의 적정이윤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장의 원리를 왜곡하여 장기적으로는 근로자, 소비자, 중소기업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되고, 국가적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한국경제연구원의 2022. 6. 3.자 보도자료 참고). 가격통제정책이 그 선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음은 이미 역사로서 증명된 사실이다. 협의제에 대한 오랜 실효성 논란에도 연동제가 채택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원사업자들의 반발이 강력해서가 아니라 연동제의 메커니즘이 시장경제질서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연동제의 도입은 협의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는 충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협의제는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크다. 먼저 원사업자에게 거부하기 힘든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하도급거래계약 안에 공급원가와 납품단가를 연동하는 조항을 자발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장려하고, 해당 조항을 두지 않은 하도급거래관계에서도 수급사업자가 단가조정 신청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정협의가 성립한 건수와 수급사업자의 만족도 등을 조사해 공정거래협약 평가기준에 반영하고, 납품단가 조정 요청은 수급사업자의 당연한 권리임을 인식하도록 제도의 홍보와 교육이 필수적이다.
또한, 수급사업자와 중소기업 협동조합 및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공정거래조정원과 중기중앙회 외 8개 민간협회에 설치)에 대해 협의제 운영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기 위한 공정위의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에서 조정이 결렬됐을 경우 구속력있는 결정을 낼 수 있는 조정-중재(Med-Arb) 하이브리드형 제도의 도입도 검토될 필요성이 있다. 중재안에 구속되는 것 보다는 조정단계에서부터 자율적으로 합의점을 찾는 것이 낫다는 고려 하에 당사자들이 합의에 이르기 위한 노력을 더 크게 기울이게 하는 유인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는 전체 기업 수의 99.9%를, 중소기업 종사자는 전체 기업 종사자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성장과 침체는 대기업은 물론이고 국가경제의 전체의 성장과 침체와 직결되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각 경제주체가 정당한 자기 몫을 가져가야한다는 컨센서스 하에 실천될 수 있다. 납품단가 조정협의제의 실효성있는 작동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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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