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업종이 아닌 계열사로부터 상표권 사용료를 받지 않은 것을 조세 회피 꼼수로 보고 법인세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상표권의 사용료는 어디까지나 서로 관련성이 있는 업종의 계열사에 한해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신명희)는 DB저축은행이 남대문세무서를 상대로 “법인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서울지방국세청은 동부그룹의 한 계열사가 출원한 상표권을 다른 계열사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음에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이에 대한 상표권 사용료를 받지 않은 사실을 적발했다. 세무당국은 동부그룹이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계열사끼리 주고받아야 할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에 상표권 사용료 수입을 받았을 경우의 수익을 기준으로 법인세를 산정한 뒤 상표권 출원 계열사에 다시 세금을 부과했다.
법인세 부담이 늘어난 이 계열사는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조세심판원은 2018년 이 계열사를 포함해 상표권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 10곳이 사용료를 나눠 내라고 판단했다. DB저축은행이 이 10개 계열사 중 하나였고, 6억여원의 법인세가 추가로 부과됐다. 그러자 DB저축은행은 세무당국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동부그룹이 조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로 계열사 사이 상표권 사용료를 받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세금 산정 방식이 잘못돼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봤다. 과세를 취소하고 세액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DB저축은행이 상표권 사용료를 받아야 하는 계열사는 유사 사업을 하고 있는 금융 법인들에 국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DB그룹이 국내 굴지의 금융 그룹인 만큼 금융 관련 계열사들은 상표권 사용으로 이미지 제고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등록상표권의 효력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품에 한해 미치는 것’이라고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건설·철강 등 금융 무관 계열사들이 쓴 상표권 사용료까지 DB저축은행의 익금에 산입해 법인세를 부과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금융 계열사 4곳의 상표권 사용료만 DB저축은행의 수익에 더해 법인세를 다시 계산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소송에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법인세를 다시 계산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법인세 부과 처분 전체를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