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다 빼앗은 국가배상… 지연이자 면제” 인혁당 피해자 ‘빚고문’ 끝

입력 2022-06-20 15:08
법무부 청사. 과천=권현구 기자

197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법원의 국가배상금 계산 변경으로 오히려 국가에 빚을 진 처지였던 이창복(84)씨가 지연이자 반환 의무를 벗었다. 법무부가 관계 기관 회의를 열어 약 9억6000만원으로 불어난 이씨의 지연이자 납부 의무를 면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씨의 상황이 국가의 ‘빚 고문’으로 지적돼온 건 오래 전부터였다.

법무부는 20일 한동훈 장관의 지시에 따라 이노공 차관 주재로 서울고검, 국가정보원 관계자가 참석한 초과지급 국가배상금 환수 관련 관계 기관 회의를 열고 이씨의 지연이자를 면제하기로 결정했다. 법무부와 관계기관은 예측할 수 없는 대법원 판례 변경에 따라 이씨에게 국가배상금이 초과지급됐고, 원금보다 큰 지연이자까지 반환하게 된 사정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는 국가의 잘못을 배상한다는 국가배상 취지, 정의관념과 상식에 비춰 가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처한 상황은 ‘빚 고문’으로 일컬어지고 있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로 8년여간 옥살이를 했던 이씨는 2007년 재심을 거쳐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씨는 이후 손해배상소송을 냈고 1심이 약 15억원의 국가배상 책임을 판단해 약 11억원을 가지급받았다. 그런데 2011년 1월 대법원은 배상액을 종전보다 줄어든 약 6억원으로 산정해 파기자판했다. 지연손해금 산정 기산일을 국가의 불법행위 시점이 아닌 사실심 변론종결 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판례였다.

대법원의 판단으로 이씨는 정해진 몫을 약 5억원 초과한 국가배상금을 지급받은 셈이 됐고, 이후 국가는 이씨에 대해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내 승소했다. 2017년에는 이씨 소유 자택에 대한 강제집행 신청을 했다. 이씨는 국가의 강제집행을 허락하지 말아 달라는 소송을 다시 제기했는데 그 사이 초과지급 배상금 원금에는 9억6000만원가량의 지연이자가 붙었다. 국회와 시민사회에서는 국가 폭력 피해자가 거꾸로 돈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계속해 왔다.

법무부는 국가소송 수행청과 지휘청 등 관계기관 회의를 통해 법원의 화해권고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이씨의 청구이의 소송을 접수한 법원은 지난달 4일 “원금 약 5억원을 분할 납부하면 그동안 발생한 지연손해금 약 9억6000만원은 면제하라”는 내용으로 화해권고를 했다. 국가채권 관리법상 채무자의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부당이득 반환의 경우에는 원금 상당액을 변제하면 지연손해금 면제가 가능한 점, 재판부의 종국적 분쟁해결 노력 존중 필요성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다.

이날 회의에서 국정원은 “전향적으로 검토해 화해권고안 수용 입장을 적극 개진했다”고 했다. 한 장관은 “이른바 ‘줬다 빼앗는’ 과정이 생겼다”는 말로 이씨에 얽힌 사태를 요약했다. 그는 “국가배상으로 받을 돈은 6억인데, 토해 내야 할 돈은 15억이 돼 그대로 방치하면 해당 국민이 억울해지게 됐다”며 “법무부는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