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오르면 나오는 ‘납품단가 연동제’ 14년만 재추진 가능할까

입력 2022-06-20 06:00 수정 2022-06-20 06:00
1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기준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각각 2104.63원, 2112.50원을 기록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납품단가 연동제’는 14년 전 추진이 무산됐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만큼 납품단가가 오르지 않아 하도급 업체가 손해 보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지만 시장 질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이번 정부도 납품단가 연동제를 들고 나왔지만 2008년 당시와 찬반 논리가 같아 도입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정부는 공정한 시장 질서와 물가 상승에 대한 대응책으로 납품단가 연동제를 들고 나왔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납품단가도 올려 하도급 업체 등 중소기업의 경영 어려움을 해소하는 방안이다.

2008년 이명박정부가 출범할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납품단가 연동제를 1순위 과제로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정부가 납품거래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기업 반발에 막힌 것이다.

이후 2019년 1월 납품 대금 조정 협의 제도가 도입돼 공급원가가 올라 하도급 대금의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수급사업자가 하도급 대금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요건이 까다롭고, 거래 단절을 우려한 중소기업이 제도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남았다.

최근 원자재 값이 급등하면서 납품단가 연동제 논의가 다시 나오고 있지만 찬반은 여전히 팽팽히 갈린다. 찬성하는 쪽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 등 최소한의 법적 규율이 필요하고, 대기업도 가격 상승 리스크를 분담해야 한다는 이유를 든다. 여야는 각각 이런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대표발의안은 원자재 기준가격이 10% 이내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비율 이상 오르면 원사업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추가로 발생한 비용을 하도급 대금에 반영하여 지급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안 역시 물품 등의 원자재 가격이 10% 이상 오르거나 내리면 변동분의 분담에 관한 사항을 약정서에 담도록 했다.

납품단가 연동제에 반대하는 쪽은 원자재 가격 인상분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에 저하된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납품단가 연동제로 대기업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이를 중간재화로 사용하는 중소기업의 생산비용도 상승하기 때문에, 대기업은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국내 중소기업 제품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재화로 대체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면 국내 산업 생태계가 오히려 취약해질 것이란 주장이다.

정부는 “조정 협의 제도를 개선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율적인 상생 문화를 유도하는 방안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하반기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범 운영해 수용성 높은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