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공무원 이대준씨 유족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문재인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를 22일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고소는 대통령기록물 공개 여부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서 전 실장과 2020년 9월 해양경찰청에 ‘자진 월북 수사 방침’을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에 대해 오는 22일 서울중앙지검에 업무방해와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해경과 국방부 등 국가기관이 ‘자진 월북’이라던 1년9개월 전 판단을 뒤집고 사과한 후 유족 측이 취하는 첫 번째 법적 조치다.
유족 측은 자진 월북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부족함에도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해경 등에 지침을 내려 월북으로 몰고 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씨의 형 이래진씨는 통화에서 “동생의 사건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사건 개시부터 끝날 때까지 청와대가 계획적으로 개입한 것 아니었겠느냐”고 성토했다.
유족 측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고소 여부는 23일 이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달 25일 대통령기록관에 청와대에서 이전된 기록물의 공개를 요청했고, 기록관 관장이 이달 23일까지 회신을 주겠다고 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기록관 측이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국회를 찾아가 자료 공개를 요청하고, 그래도 안 되면 부득이 문 전 대통령을 고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정권이 바뀐 데다 해경과 국방부에 대한 감사원 감사까지 시작된 만큼 추가 정보 공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래진씨는 “최근 국가안보실에서 ‘정보 제공과 관련해 각 부처와 조율 중이며 향후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당시 사건 처리의 컨트롤타워였던 안보실의 관련 자료는 대통령기록물로 묶여 있어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나 서울고등법원장의 영장이 있어야만 열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도 피감기관의 기밀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만, 감사 과정에서 군 당국이 사건 당시 취득한 도·감청 자료 등 특수정보(SI)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진 월북 판단’의 핵심 근거가 담긴 것으로 알려진 SI 정보는 앞서 유족의 정보공개청구 소송 과정에서 법원이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감사원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기밀에 대한) 모든 접근 권한이 있지만, 군 기밀이나 국방부 장관이 작전상 지장이 있다고 소명한 경우에는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며 “전례가 많지 않아 감사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우진 신용일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