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길 이재용, ‘기술’ ‘인재’ ‘조직문화’ 강조… 삼성 변화 빨라진다

입력 2022-06-19 15:56 수정 2022-06-19 16:12
유럽 출장길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귀국하면서 기술, 인재, 조직문화를 언급한 것은 ‘새로운 삼성’을 향한 밑그림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삼성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고 있다는 위기감을 드러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1993년 ‘신경영 선언’과 비슷한 수준의 메시지를 던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출국길에 기자들 질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던 이 부회장은 귀국길에서 작심한 듯 발언을 쏟아냈다. 유럽 출장에서 현재의 경제 위기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한국에선 못 느꼈는데 유럽에선 우크라이나 사태가 훨씬 더 느껴졌다. 시장의 여러 가지 혼돈, 변화, 불확실성이 많다”고 언급했다. 이 부회장은 해법으로 기술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기술 초격차를 강조했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미래 자동차 사업을 지목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네덜란드의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 ASML을 방문한 걸 들었다. 그는 “ASML에서 차세대, 차차세대 반도체 기술이 어떻게 되는지 볼 수 있었다”고 했다. ASML이 독점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TSMC, 인텔 등에서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달성하려면 초미세 공정에 필요한 ASML 장비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번 출장에서 이 부회장은 삼성SDI의 헝가리 배터리 공장, 2016년 11월에 인수한 전장(자동차 전자장치)업체 하만을 찾았다. 주요 고객사인 BMW와도 만났다. 이 부회장은 “자동차 업계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중심으로 바뀌는 흐름에 맞춰 삼성도 변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하만을 중심으로 하는 전장 사업,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 등을 본격적으로 키우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위기 상황에서 삼성이 해야 할 일로 인재 영입, 조직문화 개선도 꼽았다. 그는 “좋은 사람을 모셔오고, 조직이 예측할 수 있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주도하는 인사 및 조직개편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이번 유럽 출장으로 위기를 강하게 느끼고 온 만큼, 시기와 무관하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사·조직 개편을 지시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재계에서는 3년 만에 개최하는 삼성전자의 상반기 글로벌전략회의에 주목한다.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는 21일 모바일사업부(MX)를 시작으로 22일 영상사업부(VD), 생활가전사업부(DA), 28일 반도체부품(DS) 부문 순으로 진행된다.

이 부회장이 ‘기술 초격차’를 역설한 만큼, 단기 실적에 초점을 맞춘 전략회의가 아니라 장기적인 기술 경쟁력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에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리고도 주가는 하락하는 근본적 원인이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한 우려’라는 점을 심각하게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기술 초격차 재점검이 이뤄질 전망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