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도돌이표 법인세 논쟁… ‘부자 감세’ 프레임에 건전재정 상충 비판 맞닥뜨린 정부[스토리텔링경제]

입력 2022-06-20 06:00 수정 2022-06-20 06:00

윤석열정부의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법인세율 인하다. ‘친(親)기업 정책’으로 경제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윤석열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법인세율은 정권교체 시기마다 큰 변동을 겪었다. 그만큼 새 정부 경제 기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세목이다. 과거 이명박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고, 문재인정부는 법인세 과표구간을 4단계로 세분화하는 한편 과표구간 3000억원을 초과하면 최고세율 25%를 적용하기로 했다.

법인세제 개편 때마다 벌어지는 논란은 한결같다. ‘부자 증세’ 혹은 ‘부자 감세’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일단 가장 먼저 등장한다. 법인세율과 기업 투자·일자리 창출 간 어떤 상관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은 그다음이다. 이번에는 대규모 감세 정책과 재정건전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게 과연 가능하느냐는 논쟁까지 겹쳤다.

정부는 ‘조세 경쟁력’에 방점, ‘인하 효과’는 물음표
<자료: 국회 예산정책처>

정부는 법인세 인하 카드를 꺼내 들며 국제 조세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이 다른 국가보다 다소 높은 수준인 것은 맞다.

20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중앙정부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8위다.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낮추더라도 OECD 평균(21.5%)보다 높다. 실효세율(2020년 기준 17.5%)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국가별 실효세율을 비교할 수 있는 국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표구간이 4단계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OECD 가입국 대부분(35개국)은 단일세율 체계고, 2단계(네덜란드)와 3단계(룩셈부르크)를 적용하는 국가도 극히 드물다. 윤인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도 “그간 과도하게 지나쳤던 부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부분을 맞춰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법인세율 조정을 통한 기업 투자 증대·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감세로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성장 잠재력이 높아지고 세수 기반이 확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인세 인하 효과는 단언하기 어렵다. 국내 법인세 인하 사례는 이명박정부 시기가 거의 유일한데, 당시 가시적인 인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강력한 외부 변수가 존재했던 탓이다.

애초에 법인세율이 기업 의사결정에서 유의미한 변수인지도 모호하다. 조세정책연구원이 2017년 OECD 주요 국가 상장기업의 재무자료를 분석했더니 기업은 법인세율 인하보다 인상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법인세율이 1% 포인트 인상될 때 기업은 약 5% 포인트 위험 부담 수준을 감소시켰지만, 법인세율이 1% 포인트 인하되는 경우에는 최대 1% 포인트만 증가시켰다. 즉, 법인세 인하가 기업의 투자·고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명박정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의 획기적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는 연구 결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기업의 투자 행위에는 조세 이외의 다른 요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물론 기업이 투자를 할 때 여러 조건을 감안해서 하겠지만, 최소한 세제 측면에서는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부자감세’와 ‘재정건전성 상충’ 논쟁 도마 위

더 근본적으로는 ‘법인세 인상=부자 증세’, ‘법인세 인하=부자 감세’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맞느냐는 문제 제기도 있다. 일견 법인세는 부자·재벌들이 내는 세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 법인세를 통한 세금 부담은 결국 여러 경제 주체에게 전가된다.

법인의 세금이 늘면 그만큼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올라가고,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지워지는 조세 전가(tax shifting)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여기서 나온다. 국내 기업들이 초과수익에 대한 법인세 부담이 늘어나자 그 일부를 노동자에게 전가했다는 조세연의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 많은 학자들은 경제적 형평성은 소득세나 상속·증여세에서 추진하고, 법인세 단계에서는 경제적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을 고려하는 게 맞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번에는 정부 국정 과제인 재정건전성 확보와 상충된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법인세는 전체 국세 수입의 4분의 1을 웃돌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최고세율을 내릴 경우 당장 세수 감소는 불가피하다. 예정처가 2019년 신고 법인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법인세 최고세율을 20%까지 인하하고 과표구간을 단순화할 경우 법인세수는 연평균 5조7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유례 없는 초과세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법인세였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는 있다. 올해 초과세수 53조3000억원 중 법인세가 절반 이상(29조1000억원)을 차지한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도 “OECD 국가 간 비교해보면 한국 세수 증가율이 세계 4위 정도로 빠르다”며 “기업과 국민 부담이 그만큼 빠르게 증가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오히려 전 정부에서 강화된 징벌적 과세 체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기업 감세 정책이 증세 세수 기반 확보를 위한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감세 정책 속 세수 보완 대책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별개로 짚어야 할 문제다. 앞서 정부는 국정과제 이행에 209조원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물론 지출 구조조정 등 각종 재정 혁신을 통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모든 정부는 정권 초기 지출 구조조정 의지를 드러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2차 추가경정예산안 때도 최대한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된 재원이 6조8000억원에 그쳤다.

법인세제 개편을 위해 넘어야 할 거야(巨野)의 벽은 또 다른 문제다. 관련 세법 개정을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 움직임에 ‘MB 시즌2’라고 명명하며 입법을 저지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상황이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