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특급] “의대 교수 아들 점수가 유급 기준이었죠”

입력 2022-06-18 18:15 수정 2022-06-18 18:25
곽경훈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의료계 특성상 기득권 고위층 자녀들의 수상한 의대·의전원 입학 문제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소위 ‘엄빠 찬스’를 이용한 자녀들의 입학 특혜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른 건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의전원 입학이 드러나면서다. 정권이 바뀌고 지난 5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 배경에도 아빠 찬스를 이용한 자녀들의 의대 편입학 특혜 의혹이 있었다. 이후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대 교수 자녀들의 의대 편입학 전수조사를 제안했지만, 정쟁으로 치부되며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의료계 내부의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엔 너무나 공고한 카르텔. 내부 고발이 쉽지 않은 구조 속에서 누가 의사들의 세계에 대해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쪽팔리는 게 죽기보다 싫다’고 말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곽경훈, 왠지 그라면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서 ‘반항하는 의사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에 이어 최근 ‘응급실의 소크라테스’까지 내놓은 그를 지난 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현직 전문의가 바라본 최근 의대 입시 논란부터 코로나19로 달라진 응급실 풍경까지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곽경훈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최근 논란이 된 고위층 자녀들의 의대 입학 문제, 어떻게 봤나.
“입시를 복잡하게 만들면 가난한 사람이 불리하다. 가난하면 정보가 부족하고, 부유한 사람은 시험제도에 맞춰 스펙을 만들 수 있다. 수시라는 것이 불합리성을 극복하고자 만든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시험의 공정함도 담보하지 못하고 중상류층에 유리한 제도가 됐다.
재벌 아들이 의사 하는 경우는 드물다. 재산이 많으면 미국에서 MBA를 따지 의대를 보내진 않는다. 중산층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 의사다. 내가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의대 교수를 접할 일이 많은데, 대부분 의대 교수들의 목표는 자녀를 의대에 보내는 것이다. 수시가 생기고 의대 교수 자녀들이 의대에 입학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의대에 다닐 당시 느꼈던 불합리한 점은 없었나.
“의대를 졸업하는 데 제도로는 6년이지만 실제 평균으로는 6.8년 정도 된다고 하더라. 그 말은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유급하는데 아버지가 근무하는 의대에 다니면 유급을 안 한다. 의대는 상대평가인데 의대 교수 자녀보다 공부를 못하면 다 떨어지는 것이다. 교수 자녀의 성적이 딱 기준이 되는 것이다. 내가 의대 다닐 때도 아버지가 교수였던 형이 동기여서 ‘그 형보다 잘하자’가 학생들의 목표였다. 나도 그 형보다 못해서 유급 한 번 했다.”

-‘엄빠 찬스’가 없는 청년들은.
“우리가 고려 시대보다 조선 시대가 발전됐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과거제도 때문이다. 고려 시대에는 고위 관료 자녀들이 과거를 치지 않고 음서제를 이용해 관직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아무리 명문가라도 과거를 치지 않고 음서제로 높은 관직에 가는 것을 수치스러워했다. 현대판 ‘엄빠 찬스’가 고려 시대 음서제와 똑같다. 부모 특혜를 받아 좋은 학교, 직장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고 그걸 당당히 여긴다. 지금 젊은 세대가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것도 이 시험이 대학교 수시 같은 기준을 알 수 없는 제도보다는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험의 불완전성을 알면서도 의지하는 건가.
“청년들도 바보가 아니다.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 이런 것들이 절대적으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최소한 음서제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고리타분한 시험이 주는 공정성을 차라리 믿게 된 것이다. 기성세대가 반성해야 한다.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걸 좌우하는 불완전한 입학시험, 취업 시험에 의존하지 않아도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청년들이 시험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로스쿨을 없애고 사법고시를 다시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왜 이들이 불완전한 시험을 공정하다고 말하는지, 기성세대가 봐야 한다.”

곽경훈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코로나 전과 후, 병원의 응급실은 어떤 점이 달라졌나.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응급실의 감염관리가 전혀 안 됐다. 격리실을 만들려고 하면 비용도 많이 드는데 병원 경영실은 꼭 필요하지 않으면 비용을 투자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전국을 휩쓸면서 열이 나고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격리 공간으로 옮겼다. 한국 응급실에서 감염관리가 이뤄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역 소규모 병원 응급실에도 감염관리 시설이 갖춰졌고, 의료진도 시스템에 익숙해졌다. 다만 이를 위해 의료진이 많이 필요하지만 충원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진 번아웃이 심각했다.”

-응급실에서 본 인간의 본성은 어떤 것인가.
“원래 인간의 본성의 악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응급실에서는 가끔 인간의 선량함을 본다. 자기 순서가 됐더라도 긴급한 환자가 오면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순서를 양보한다. 제도로만 보면 순서대로 진료를 봐야 하지만, 긴급 환자 앞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사회의 지탄받는다. 이런 것들이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다.”

-때때로 응급실을 긴장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응급실 스텝들은 장애인 환자가 오면 긴장한다. 아무도 차별하지 않지만, 당사자가 차별받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의료진이 더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도 ‘내가 장애인이라고 무시하느냐. 왜 빨리 진료하지 않느냐’면서 떼를 쓰는 분도 있다. 이런 분들은 치료가 끝난 뒤 장애인 단체에 얘기를 전하고, 다음날 장애인 단체에서 병원을 찾아와 시위한다. 이런 경우는 경찰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응급실에서 본 고위 공무원의 갑질도 있었나.
“지난해 여름 코로나19가 한창이었을 때다. 모 지역의 시장이 자신의 PCR 검사를 앞두고 직원 한 명을 보냈다. 본인이 오후 2시에 검사를 맡아야 하니 오전 9시부터 가서 줄을 서라는 지시였다. 결국 그 직원은 5시간 동안 응급실에서 줄을 섰고, 해당 시장은 1초의 기다림도 없이 VIP 대접을 받으면서 순식간에 검사를 받고 조용히 나갔다. 어떤 구청장은 응급실을 자신의 호텔처럼 여기고 매번 피곤할 때마다 침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의사가 본 응급실 밖 우리 사회는 어떤가.
“양극단으로 분열됐는데 그 이유는 개인이 강렬하게 미워하거나 지나치게 숭배하는 존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을 추종하고 사랑하고, 자기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정치인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갖기 때문에 갈등이 격화한다.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갈등이 생긴다. 이슬람교든 백인 우월주의자든 자아가 없어서 극단적 사상을 자기 안에 둔다. 자아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그런 종교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느낀다. 자아가 내면에 강하게 자리 잡혔다면 극단적 사상에 휘둘리지 않는다.”

-의사로서 끊임없이 책을 쓰는 이유는.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학자로 인정받기 전 돈을 많이 벌지 못해 바이올린 연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안톤 체호프, 코난 도일도 작가로 성공하기 전까지 생계를 위해 의사로 일을 했다. 유명한 작가들을 보면 본 직업이 따로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전업 작가라면 하고 싶은 말, 비판하고 싶은 것들을 소신껏 내뱉지 못한다. 독자가 원하는 글을 적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어느 한쪽 진영에 가서 그 무리가 좋아하는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본업이 의사다. 그래서 더 소신껏 사회 문제든 정부 정책이든 의료계의 부조리든 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곽경훈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그는 지난 2020년 병원 내 부조리에 대응하는 본인의 고군분투기를 담은 책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를 썼다. ‘쪽팔리는 게 죽기보다 싫은 응급실 레지던트’라는 부제목은 곽씨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환자 보호자가 치료가 끝난 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 늘 “어차피 돈 받고 하는 일이라 힘들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환자는 ‘피식’ 웃고, 동료들은 왜 그렇게 시니컬하게 대답하냐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이 대답은 곽씨의 진심이다. 자원봉사자로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 칭찬받아야 할 일이지만,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오히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쪽팔린 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난 8일 출간한 책 ‘응급실의 소크라테스’엔 삶과 죽음, 공간과 순간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담았다. 의학 드라마에 나오는 가슴 따뜻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 고결한 이상주의자, 뜨거운 휴머니스트. 이중 곽씨가 이상으로 삼는 의사의 모습은 없다. 그는 의사로서 ‘감정 과잉’ 상태를 지양한다. 평범한 직장인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의사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날 2시간 넘는 인터뷰에서 보여준 그의 시선에선, 직업윤리에 철저한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냉철함과 동시에 사람을 향한 애정이 만들어낸 온기가 함께 느껴졌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