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려진 북한 영화·방송계에 최근 신선한 얼굴들이 데뷔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신인 배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모습은 북한 문화정책에 일대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8일 북한 매체에 따르면 지난 4월 조선·25예술영화촬영소가 공개한 예술영화 ‘하루낮 하루밤’의 주연 배우는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다. 배우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전쟁노병 라명희를 모델로 했다. 별도 시사회를 가진 뒤 지난 4월 태양절(김일성 생일)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경축 영화상영주간에 상영되는 등 북한 사회에서 이목을 끌었다.
또 최근 북한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종영한 TV연속극 ‘마지막 한 알’의 주연 역시 신인 배우였다. 이 드라마는 1970년대 세계 탁구대회를 제패한 ‘탁구 여왕’ 박영순의 생애를 모티브로 한 6부작이다. 지난 4월 3일 조선중앙TV에 처음 방송돼 지난달 종영했다. 선수 시절의 박영순 역은 신인 배우 리효심(22)이 꿰찼다.
재일본조선인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리효심이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학부 영화배우과 3학년 재학 중이라고 소개한 뒤 “많은 시청자가 그를 전문 탁구 선수 경력을 가진 배우로 착각했다”며 “진실한 연기 형상으로 보여주었다”고 극찬했다.
리효심은 종영 인터뷰에서 “미숙한 연기였지만, 사람들이 어제 날의 살아있는 박영순을 보는 것 같다고 이야기할 때 정말 흥분과 격정이 컸다”며 “그럴수록 자만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분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북한에서 예술은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사용된다. 메시지의 전달자를 부각하지 않는다. 특히 영화광이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북한 영화·방송계는 쇠락을 거듭했다. 조선중앙TV에는 공훈배우, 인민배우 호칭을 받은 배우들의 수십 년 전 작품이 매일 재방송되는 실정이었다. 남한 사회와 같은 ‘스타’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도 그래서다.
그랬던 북한 영화·방송계에 신인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은 북한 문화정책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자본주의 문화가 젊은이들에게 침투해 사상이 이완되지 않도록 콘텐츠 다변화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19년 1월 30일 논설에서 “제국주의자들은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상과 생활 풍조를 문학예술이라는 현란한 면사포로 감싸 사회주의 화원 속에 침투시키기 위하여 발악적으로 책동하고 있다”며 “문학이라는 서정 속에, 음악이라는 오묘한 선율 속에, 회화라는 신비한 빛깔 속에 비루스(바이러스)처럼 은밀히 숨어들어오는 반동적인 사상의 침투력과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경계한 바 있다.
지난 8~10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는 “당 정책 관철의 혁명적 기상이 세차게 나래치게 하는 데서 문학예술, 출판보도 부문 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투쟁 방향이 제시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