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 공무원’ 유족 오열 “아버지 월북자 오명 벗어”

입력 2022-06-17 14:23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아내가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전날 대통령실과 해양경찰이 발표한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해 피살 공무원의 유족들은 17일 윤석열정부에서 2년 전과 완전히 뒤집힌 수사 결과가 발표된 것에 대해 “해상 실종 사건이 월북 프레임으로 (문재인정부에 의해) 조작됐다”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이대준씨의 유족 측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월북자 오명을 벗게 됐다”며 고인의 이름을 공개하고 이같이 밝혔다.

고인의 아내는 월북자라는 불명예를 벗게 됐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쓴 아들의 편지를 대독했다. 이날 생일을 맞아 스무 살이 된다고 소개한 이씨의 아들은 윤 대통령에게 A4 용지 두 장 분량의 편지를 썼다.

이대준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쓴 감사 편지 일부. 유족 측 제공

이씨 아들은 편지에서 “월북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긴 시간 동안 수없이 좌절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며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는 월북자로 낙인찍혔고, 저는 아버지도 잃고, 꿈도 잃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아버지가) 월북자란 걸 알게 될까 평범한 가정인 척 살았다”며 “‘아버지는 월북자가 아니다’라는 외침을 들어준 윤 대통령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인사했다.

이어 “한 국민이 살해를 당하고 시신까지 태워졌지만, 이 일련의 과정에서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했다”며 “윤 대통령이 주눅 든 저에게 ‘꿈이 있으면 그대로 진행하라. 진실이 곧 규명된다’는 말씀을 해 많은 용기를 받았다”고 했다.

이씨 아들은 아버지 실명을 공개한 경위에 대해선 “제 아버지도 똑같이 세금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었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었다”고 부연했다. 또 문재인정부를 향해선 “죽음의 책임이 정부에 있지 않다는 말로 무참히 짓밟았다. 직접 챙기겠다는 거짓 편지 한 장 손에 쥐여주고 남겨진 가족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비판하면서도 “윤 대통령의 도움으로 원망도, 분노도 씻으려 한다”고 했다.

유가족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저희가 확보한 당시 해경 진술 조서를 보면 한 직원이 ‘월북을 하려면 방수복을 입고 바닷물에 들어가야 했는데, 이씨 방에는 방수복이 그대로 있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해경은 그 부분을 빼고 월북이라고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때 직원들이 (방수복 없이) 물에 빠지면 저체온증으로 3시간 만에 사망한다는 말도 했으나 이 내용 역시 빠졌다”며 “월북이라는 방향과 다르니까, 이걸 맞추기 위해서 증거를 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유족의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가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전날 대통령실과 해양경찰이 발표한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피살 공무원이 탑승한 무궁화 10호 직원의 진술서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회견에서 이씨 피살 사건과 관련한 진술이 처음 공개되면서 당시 해경의 수사결과 발표를 둘러싼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유족 측은 이씨가 피살 전 월북을 하려는 징후가 없었다는 ‘무궁화 10호’ 직원들의 진술 내용도 전했다.

직원들은 “오늘 뉴스에서 이씨가 월북했다는 보도를 보고 터무니없는 말이라 깜짝 놀랐다”, “이씨가 월북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과 관련한 언급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등의 발언을 했다.

김 변호사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지침을 내린 것을 확인했다”며 “이 지침 때문에 정당한 공무 집행(사건 조사)이 방해받았고, 결국 월북이라고 발표됐다”고 질타했다.

고인의 형 이래진씨는 “그간 마음껏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며 살아왔다”며 “이제는 고개 들고 앞으로의 긴 싸움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국방부와 해경이 월북하려다 피격당했다고 발표한 것이 서훈 전 안보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알기 위해 서 전 실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윤석열정부는 2020년 9월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정부가 과거 내렸던 판단을 뒤집었다. 당시 해양경찰은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월북 시도를 했다고 판단지만, 해양경찰은 16일 브리핑을 열고 “월북 의도를 인정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피살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께 혼선을 드렸으며, 보안 관계상 모든 것을 공개하지 못함으로 인해 더 많은 사실을 알려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