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없는 단톡방서 욕설도 학교 폭력” 법원 판결

입력 2022-06-17 10:26 수정 2022-06-17 10:38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에서 특정인을 대상으로 욕설을 했을 경우 해당 단톡방에 욕설 피해 당사자가 없어도 학교 폭력이 인정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인천지법 행정1-2부(부장판사 김석범)는 중학생 A양이 인천의 한 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서면 사과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A양 패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A양은 지난해 4월 또래 친구 10명이 대화를 나누는 단톡방에서 친구 B양에 대해 심한 욕설을 했다.

A양은 또 같은 달 단톡방에서 반장인 여학생에 대해서도 “이미 우리 손으로 뽑은 거지만 그 대가를 안 치러 주잖아. 지가 반장답게 행동하든가” 등 욕설을 했다.

피해 학생들은 단톡방에 초대되지 않았고, A양이 자신들을 상대로 욕설을 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이들은 우울장애 등을 겪었다. 이 중 1명은 적응장애 진단을 받아 중학교 교육 과정 유예를 신청하는 등 극심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교육지원청은 같은 해 6월, 7월 두 차례에 걸쳐 학교 폭력 대책심의위원회를 열고 A양이 B양에게 서면으로 사과를 하고 봉사활동 8시간과 특별교육 4시간을 이수하라고 의결했다.

이후 A양은 학교가 심의위원회 의결대로 처분하자 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A양 측은 재판에서 “두 차례 단톡방에서 욕설한 행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상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여러 명이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에서 동조해 우발적이고 일회적으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 것”이라며 “피해 학생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의도와 공연성이 없어 명예훼손이나 모욕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양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톡방에 피해자들이 없었다고 해도 A양의 발언은 모욕에 해당하며 학교폭력으로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채팅방 구성원이 서로 친한 사이라도 피해 학생들에 대한 모욕의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실제로 이후 피해 학생들이 (A양이 욕설한 사실을) 알게 된 점까지 고려하면 공연성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A양은 자신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 범위 내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욕설 수위 등을 보면 허용 수준의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피해 학생들이 단톡방에서 모욕당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충격을 받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양은 피해 학생들을 모욕해 정신적으로 피해를 줬고 이는 학교 폭력에 해당한다”며 “당시 교육지원청의 처분이 재량권을 남용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