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도 버린 자식…” 경주에 등장한 ‘익스플로러’ 묘비

입력 2022-06-17 00:07
한 한국인이 익스플로러를 기리기 위해 묘비를 제작했다. 클리앙 캡처

시대 변화에 따라 운영을 종료하게 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위한 묘비가 한국 경주에 설치됐다. 한 한국인이 익스플로러의 그간 업적을 기억해주고 싶다며 경주에 사적으로 마련한 이 추모 공간이 누리꾼들에게 알려지며,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한 누리꾼은 온라인커뮤니티에 ‘독보적이었던 그의 업적을 기억하며’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익스플로러 로고가 세겨지 묘비 사진을 올렸다.

그는 “오늘내일하던 친구가 결국 곁을 떠났다”면서 “부모(MS)도 이제 버린 자식이라 그런지, 아무도 빈소를 마련해주지 않아서 경주에 있는 친형에게 부탁했다”고 적었다. 작성자는 이 묘비가 경주의 한 카페 옥상에 마련돼 있다면서 “언제든 조문 가능하다”고 밝혔다.

작성자가 사진을 올린 날은 MS가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 버전 11지원을 중단한 날이다.

한 때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의 95%를 점유한 익스플로러는 크롬과 파이어폭스의 등장, 스마트폰 시대로의 전환 등으로 점유율이 1%대로 급락했다.

MS는 이에 익스플로러 운영을 종료하고 호환성과 속도가 좋은 엣지로 완전 대체키로 했다.

이렇게 사라지게 된 익스플로러를 ‘부모도 버린 자식’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묘비에는 “He was a good tool to download other browsers(그는 다른 브라우저를 다운로드 받기 좋은 도구였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클리앙 캡처

작성자는 주문 제작 방식으로 검은색 묘비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묘비에는 “He was a good tool to download other browsers(그는 다른 브라우저를 내려받기 좋은 도구였다)”는 문구와 익스플로러 서비스가 이뤄졌던 기간(1995년 8월~2022년 6월)이 적혀 있다.

작성자는 이어 묘비 앞에 꽃 한 다발과 술잔을 놓은 사진을 올리며 “주말에 소주 들고 한 번 더 가볼 참이다. 삼가 고(故) 앱(APP)의 명복을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 양손으로 빕니다”라고 애도했다.

누리꾼들은 “익스플로러는 죽었지만 내 가슴에 호환모드가 되어 같이 살아가자” “정들었는데 이젠 안녕이다. 그동안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등의 댓글을 달아 추모에 동참했다.

지난 2010년 3월 미국 덴버에서 익스플로러 6 장례식이 열렸다. FavBrowser 캡처

과거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허프포스트에 따르면 2010년 3월 미국 덴버에서 익스플로러 6가 종료를 추모하기 위한 장례식이 열렸다.

당시 조문객들은 익스플로러 로고를 얼굴로 한 마네킹에 곤색 슈트, 파란 장갑, 검은 구두 등을 착용시켜 이를 관 속에 반듯하게 눕혔다. 병에 로고를 붙여 크롬, 파이어폭스, 사파리 등 경쟁 인터넷 브라우저를 조문객으로 참여시키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이 익스플로러 6 장례식에 보낸 조화. FavBrowser 캡처

당시 MS 관계자들은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진 않았지만 “10년 가까이 운영되느라 고생했다. 고마웠다”라는 문구가 적힌 조화를 장례식장에 보내는 것으로 추모에 동참했다.

누리꾼들은 이번 한국에서 마련된 추모 공간에 대해서도 MS 측에서 별도의 반응이 나올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찬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