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전·현직 직원 1300여명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최대 40%의 임금을 삭감당했다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 법원이 사측 손을 들었다. 이는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정년 연장없이 도입된 임금피크제에 대해 무효라는 판단을 내린 후 나온 첫 관련 하급심이다. KT의 임금피크제가 정년을 연장하며 도입된 것인 만큼 이번 판결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한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이기선 부장판사)는 16일 KT 전·현직 직원 131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2건을 모두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KT와 이 회사 노동조합은 2014∼2015년에 걸쳐 이뤄진 단체 협약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했다.
해당 합의에는 정년을 종전의 58세에서 60세로 늘리는 대신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을 만 56세부터 4년에 걸쳐 매년 연봉의 10∼40%씩 총 100%를 삭감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년을 2년 늘리는 대신 1년치 연봉을 덜 받게 되는 구조다.
이후 노동자들은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노조가 사측과 밀실에서 합의를 체결했고, 이로 인해 근로자 1인당 10∼40%의 임금이 삭감됐다”며 삭감된 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기 전후를 비교해 보면 결국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의 총액은 더 많아진다”면서 “원고들은 정년 연장과 분리해 임금피크제를 ‘합리적 이유가 없는 연령 차별’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별도로 분리해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한 “2014년 KT의 영업손실은 7194억원, 당기순손실은 1조1419억원에 이르러 고령자고용법(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른 정년 연장에 대응해 임금피크제를 실시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다”면서 사측의 경영 사정도 고려 대상이라고 밝혔다.
근로자들은 노조가 조합원 총회 의결도 거치지 않은 채 사측과 밀실 합의를 했고, 노조위원장이 대표권을 남용해 합의한 것인 만큼 해당 임금피크제 합의가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노조위원장이 노사 협의 과정에서 조합원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것이 노조원들의 절차적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내부적 절차 위반이 있었더라도 위원장이 노조를 대표해 체결한 합의 효력을 대외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확정된 대법원판결에 따른 법리”라고 판단했다.
이어 “임금 체계 개편은 사업주뿐 아니라 KT 노조의 의무이기도 하다”면서 “당시 KT의 경영 상황, 협약을 체결한 노조위원장이 이후에도 재차 위원장에 선출된 점, 노사가 여섯 차례 노사상생협의회를 열어 임금피크제의 구체적 내용을 협의한 점, 노조가 임금 삭감률을 두고 사측의 양보를 일부 얻어낸 점을 고려하면 노조위원장이 대표권을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