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991년 경찰법 논의 당시 “경찰 독립성” 언급 있었다

입력 2022-06-16 16:02 수정 2022-06-16 16:27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경찰 독립성이 침해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 독립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황정근 위원장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찰 독립’이라는 말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고 했다. ‘경찰 독립성 침해’라는 비판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취지로 읽혔다.

하지만 1991년 경찰법 제정 당시 국회 법안 심사 과정을 보면 ‘경찰 독립성’에 대한 언급이 분명히 기록돼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경찰이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지적이 누적돼왔고, 이 과정에서 경찰 독립과 중립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행안부가 민주적 통제를 명분으로 경찰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면서 경찰법 제정의 역사적 맥락이 고려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일보가 16일 경찰법 제정 당시 국회 회의록과 법안 심사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1991년 경찰법 제정 논의 당시 경찰 독립에 대한 언급이 다수 확인됐다. 경찰청 개청으로 이어진 경찰법 정부안 원문에는 ‘독자성’이라는 표현만 있지만, 논의 맥락을 보면 ‘독립’의 취지로 쓰인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1991년 1월 29일 국회 내무위원회(행정안전위원회의 전신)에서는 정부가 제출한 경찰법안을 심사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법안을 검토한 국회 전문위원은 “지금까지는 경찰 업무를 내무부 장관이 장리(掌裏·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권한이 미치는 테두리의 안)하고 치안본부장이 내무부 장관의 보조 기관으로 이를 수행해왔다”며 “이제는 내무부 장관 소속하의 중앙행정기관이 되어 그 권한과 책임하에 경찰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으로서 이는 경찰 행정의 독립성을 지향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에서 외청으로 승격되는 과정에 ‘독립성’에 대한 의미가 반영돼 있다는 설명을 강조한 것이다.

내무위 심사보고서에도 “치안본부를 내무부 장관 소속하의 경찰청으로 개편함으로써 경찰행정의 책임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적혀있다. 같은 해 7월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이상연 당시 내무부 장관은 “경찰청이 발족되면 내무부의 외청인 독립된 중앙행정기관이 됨으로써 경찰의 독립성과 책임성이 강화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당시 언급 외에도 경찰 독립과 중립화에 대한 논의는 1960년 이래로 꾸준히 이뤄져왔다. 특히 4·19 혁명을 계기로 제정된 제2공화국 헌법에는 ‘경찰의 중립을 위하여 필요한 기구를 둔다’는 경찰 중립 조항도 신설됐다.

1960년에도 경찰중립화법안이 발의됐는데 당시 국회 속기록을 보면 김선태 경찰중립화법안 기초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경찰관들이 집권당이나 행정부에 예속돼 사병화 됐다”며 “경찰이 집권당의 사병이 되지 않도록 정치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마련하는 것이 조급한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행정부에 경찰을 예속시키는 것은 귀한 학생들의 피를 헛되이 돌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단됐던 경찰 중립화 논의는 1988년 들어 다시 재점화됐다. 1989년 12월 14일 국회 내무위 회의에서 당시 심완구 의원은 “경찰이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 집권세력의 정권유지를 위한 전위역을 담당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크게 저해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요소가 됐다”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찰 조직 내부와 시민사회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독립돼 온 경찰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행안부가 일방적으로 경찰 통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경찰개혁네트워크 관계자는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행안부가 나서서 경찰을 통제한다는 것은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창룡 경찰청장도 이날 오전 경찰 내부 게시판에 “경찰의 독립성은 영원불변의 가치”라며 “직에 연연하지 않고 역사에 당당한 청장이 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행안부 자문위의 강도 높은 권고안 발표를 앞두고 조직 수장으로서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김 청장은 “경찰법의 정신과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주어진 소임과 책무를 다하겠다”며 강경 대응 방침도 시사했다.

행안부는 오는 21일 오후 1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자문위의 권고안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자문위원장을 맡은 황정근 변호사가 직접 내용을 설명하고 질의응답도 가질 예정이다. 자문위 권고안에는 행안부 장관의 사무에 ‘치안’과 ‘사법경찰’을 추가하는 방안을 비롯해 ‘경찰청장 지휘 규칙’ 제정, 대통령 직속 경찰개혁위원회 설치 권고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행안부가 경찰을 사실상 직접 통제하는 수준의 내용이어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