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는 16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공무원의 자진 월북 시도를 단정한 문재인정부의 판단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정보공개 청구 관련 소송 항소를 포기했다. 해양경찰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열고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했다고 단정할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전 정부의 판단을 현 정부가 공식적으로 뒤집으면서 정치적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이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항소를 취하했다.
해당 소송은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의해 피살됐던 해양수산부 소속 1등 항해사 이대준(사망 당시 47세)씨 유족이 제기했다. 정부의 항소에 따라 ‘정보를 일부 공개하라’는 1심 판결이 확정된다.
관련 내용이 이미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이관돼 실질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안보실은 “유족에게 사망 경위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정보를 제한했던 과거의 부당한 조치를 시정하고 국민 알권리를 충족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인천해양경찰서는 이날 브리핑을 열고 이씨의 월북 의도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해경은 문재인정부 당시 고인의 채무 등을 근거로 이씨가 월북 시도 중 표류했다고 단정했던 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군 당국 첩보 등을 근거로 이씨가 월북했다고 밝힌 수사 결과를 정권이 바뀐 후 뒤집은 것이다.
박상춘 인천해경서장은 “피격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현장조사 등을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윤형진 국방부 정책기획과장도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다”며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정황이 있었다는 것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윤 과장은 “(과거) 공무원의 월북 시도가 추정된다고 발표해 국민들께 혼선을 드렸다. 보안 관계상 모든 것을 공개하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해경은 또 이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북한 군인과 관련해 “북한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고 피의자를 소환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수사 중지를 했다”고 밝혔다. 박 서장은 “오랜 기간 마음의 아픔을 감내했을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정보공개청구 소송의 또 다른 피고였던 해경은 법원 판결에 따라 초동 수사 자료를 원고였던 유족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윤석열정부 안보실 관계자들은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유족 측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진상규명을 약속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사건 당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씨가 월북을 시도했다’고 본 문재인정부의 판단이 왜곡됐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월북 시도를 단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다.
현 대통령실은 문재인정부가 남북 대화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국민 인명사고에 적절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해온 고인의 형 이래진씨는 이날 “진실 규명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며 “거짓 수사로 사건을 은폐했던 해경 수사 책임자들을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인의 형은 앞서 “동생이 타고 있던 선박에 공무원증과 신분증이 그대로 있었다. 북한이 신뢰할 공무원증을 그대로 둔 채 월북을 시도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정부가 동생을 나쁜 월북자로 만들어 책임을 피하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해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군과 정보 당국은 이씨가 월북을 시도하다가 북측 해상에서 표류했고 북측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밝혔다.
당시 해경은 이씨가 도박 빚 때문에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자진 월북했다고 설명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지난해 12월 “집권하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자료를 공개할 것”이라고 공약했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