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시간을 착각해 판매 중인 즉석식품을 꺼내먹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6단독(강영재 판사)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 A씨에게 지난 13일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서울 강남의 한 편의점주는 당시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일하던 A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판매시간이 남은 상품을 고의로 폐기 등록하고 먹었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2020년 7월 5일 오후 7시 40분쯤 5900원짜리 즉석식품 ‘반반족발세트’를 냉장 매대에서 꺼내먹었다. 점주가 제출한 CCTV 영상에는 A씨가 해당 즉석식품을 계산대로 가져가 폐기 대상으로 등록한 뒤 먹으려고 하는 모습이 담겼다.
문제는 ‘반반족발세트’가 오후 7시 30분 폐기 대상 상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즉석식품은 밤 11시 30분에 폐기돼야 할 냉장식품이었다. 오후 7시 30분은 도시락의 폐기 시간이다.
A씨는 이 즉석식품을 도시락으로 착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편의점에서 판매하던 ‘반반족발세트’는 고기·마늘·쌈장·채소 등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돼 있다. 포장 상태가 일반적인 편의점 도시락과 유사한 모양이다. A씨는 도시락 폐기시간 10여 분 뒤에 해당 즉석식품을 냉장 매대에서 꺼내와 폐기한 뒤 취식했다.
사건 당시 해당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점원들은 유통기한을 넘겨 폐기 대상이 된 즉석식품을 먹을 수 있다는 내용의 교육을 받았다. 점원들은 상품별 시간에 맞춰 냉장 매대 등에 진열된 즉석식품을 폐기해야 했다.
정식재판에 앞서 법원은 검찰의 약식기소를 받아들여 지난해 8월 A씨에게 20만원의 벌금형 약식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A씨는 약식명령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한 뒤 “횡령하려는 고의가 전혀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강 판사는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 사진을 보고 “꼭 쌀밥이 있어야만 도시락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A씨가 ‘반반족발세트’의 품목을 도시락으로 생각하고 폐기시간대를 저녁 7시 30분으로 봤을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점주 측이 도시락·냉장식품의 의미와 종류를 상세히 미리 교육한 증거나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르바이트 6일 차였던 A씨가 ‘반반족발세트’에 대해 미리 냉장식품이라는 교육을 받은 게 아니라면 도시락인 것으로 착각했을 수 있다는 취지다.
아울러 A씨에게는 자신이 근무하던 편의점에서 5일간 최소 15만원 이상의 돈을 들여 상품을 구매한 기록이 있었다. 강 판사는 구매기록을 두고 “근무 일수가 5일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라고 봤다. 편의점 상품 중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본인 돈으로 구매했던 A씨가 5900원짜리 ‘반반족발세트’만 유독 횡령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 판사는 “피고인이 5900원짜리 반반족발세트를 정말 먹고 싶었다면 돈을 내고 먹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는 A씨가 폐기대상이 돼 먹어도 되는 제품인 것으로 판단해 먹은 것으로 보일 뿐, 횡령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예솔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