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 크기 금박 화조도’ 미스터리… 통일신라 태자의 아쟁 장식일까

입력 2022-06-16 11:06 수정 2022-06-16 11:20
2016년 11월, 통일신라시대 태자의 거처인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 조사(‘나’지구)를 하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발굴 팀은 돌돌 말아 구긴 휴지 같은 금박뭉치를 발견했다. 각각 건물지와 회랑지에서 20m 가량 떨어진 채 각각 출토된 이 금박유물 쪼가리를 폈지만 별게 없었다. 그런데 보존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깨진 거울을 붙이듯 금박 유물 하나로 합친 뒤 현미경으로 관찰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가로 3·6㎝, 세로 1.2㎝, 즉 어른 손가락 한 마디도 안되는 크기 안에 머리카락 굵기(0.08㎜)보다 가는 선(0.05㎜)으로 꽃 더미 속에 새 두 마리가 마주한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금박유물 전체 사진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6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통일신라 3㎝ 금빛 화조도’를 공개했다. 새 주위의 꽃 무늬는 문양을 원형으로 늘어놓아 꽃을 위에서 본 형태를 연상시켜 단화(團華)라고 불린다. 단화는 경주 구황동 원지 출초 금동경통장식, 황룡사 서편 폐사지 출토 금동제 봉황 장식등에서 확인되는 통일신라 장식 문양 중 하나다. 이로 미뤄 이 금박 화조도는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출토 당시 모습.

금박의 문양은 목재 받침 등에 금박을 고정한 뒤 새겼다. 온전한 형태로 볼 때 지금보다 넓은 금박에 문양을 새긴 뒤 사용할 부분만 오려낸 것으로 보인다. 따로 매달 수 있는 구멍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용도는 어떤 기물에 직접 부착한 장식물로 분석된다.
금박 세부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 마름모꼴 금박 화조도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이한상 교수는 “무늬의 정교함으로 미뤄 왕실에서 사용한 것은 분명하다”며 “못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아쟁 등 나무로 만든 악기에 위엄을 드높이려 부착한 장식이었을 것으로 짐작 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황남대총, 천마총 등 5∼6세기 신라 무덤에서는 금관 등 금속 유물이 대거 발굴됐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금속 유물을 무덤에 묻는 관행이 사라졌고, 이에 따라 통일신라의 정교한 공예수준을 보여주는 금속 유물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출토품은 가치가 크다. 이 교수는 “새가 마주보는 무늬는 당시 서역에서 크게 유행했던 모티브로 국제적인 나라였던 당나라를 거쳐 통일 신라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문화의 수준이 높을수록 금속 공예 기술 수준이 높기 마련인데, 이 유물은 테크닉이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나온 것 중에서 가장 정교하다”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천존고에서 ‘3㎝에 담긴, 금빛 화조도’ 특별 전시를 통해 이 유물을 일반에도 선보인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