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최정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룹 방탄소년단(BTS)가 14일 ‘팀 활동 잠정 중단’을 전격 선언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013년 데뷔 이래 9년간 쉴새 없이 달려오면서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정체성 회복과 성장을 도모할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은 2015년 국내 음악방송 첫 1위에 이어 2016년 국내 시상식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듬해인 2017년부터는 해외에서도 인기를 구가해 K팝을 대표하는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발표한 영어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 ‘버터(Butter)’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는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에서 연거푸 1위를 한 것에 더해 방탄소년단에게 아시아 가수 최초로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대상을 안겨줬다.
그러나 정작 멤버들에게는 이 시기가 정체성의 혼란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2020년 2월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7(MAP OF THE SOUL: 7)’ 이래 코로나19로 준비한 계획이 꼬이면서 멤버들조차도 그룹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날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RM은 “방탄소년단이 ‘온(ON)’과 ‘다이너마이트’까지는 우리 팀이 내 손 위에 있었던 느낌인데, 그 뒤에 ‘버터’와 ‘퍼미션 투 댄스’부터는 우리가 어떤 팀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토로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13일 신보 ‘프루프(Proof)’ 발매를 기념한 유튜브 무대에서도 “2020년부터 지금까지 저희가 한 많은 것들이 계획된 것은 전혀 아니었다”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그때 고민하고 갑작스럽게 결정한 유동적인 것이 많았다, 걸어가면서도 ‘이게 맞나?’ 싶어 무섭기도 했고, 정답인지 많이 고민하기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팀 활동을 중시해 개인 활동을 용인하지 않던 소속사 정책으로 멤버 개개인의 빼어난 음악적 역량을 분출하지 못한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지금까지 솔로 음악 활동은 정식 음반이 아닌 ‘믹스테이프’(비정규 음반) 형태로만 선보여 왔다. 이 때문에 정작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는 멤버들의 솔로곡을 들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군 복무 또한 팀 활동 잠정 중단과 솔로 활동 본격화라는 큰 결정에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방탄소년단의 맏형 진은 1992년생으로 2020년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입영 연기 추천을 받아 올해 말까지 입영이 연기된 상태다.
대중문화예술인도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할 수 있게 하는 병역법 개정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지만, 통과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설사 국회 문턱을 넘는다고 해도 통상 시행까지 6개월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방탄소년단 그룹 차원의 대체복무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통상 글로벌 스타들은 1년 전에 미리 해외 투어 콘서트 등을 계획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입대의 불확실성 때문에 올해 하반기와 내년 팀 단위 계획도 잡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팀 활동에 잠시 쉼표를 찍는다면 입대를 목전에 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솔로 활동으로 팬을 계속 만날 수 있다.
한편, 방탄소년단의 단체활동 중단 선언을 두고 지난 10일 발매된 신곡 ‘옛 투 컴(Yet To Come)’의 가사도 재조명받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이 노래에서 ‘다들 언제부턴가 말하네 우릴 최고라고/ 온통 알 수 없는 네임즈(names)/ 이젠 무겁기만 해’라고 그간의 부담감을 읊조렸다. 그러면서도 ‘긴긴 원을 돌아 결국 또 제자리/ 백 투 원(Back to one)’이라며 다시 하나가 될 것임을 약속했다.
앞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유튜브 영상에서 저마다 쌓였던 고충과 피로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민은 “저희가 각자 어떤 가수로 팬분들에게 남고 싶으냐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돼서 지금 좀 힘든 시간을 겪는 것 같다”며 “정체성을 인제야 찾아가려고 하는 시기라 지치고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이어 “팬들도 우리를 알고, 우리도 팬들을 알지 않느냐”라며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지친 것도 있어서 인제야 조금씩 풀어나가려 한다”고 덧붙였다.
RM도 “K팝이라는 것과 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며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슈가는 “2013년부터 작업을 해 오면서 한 번도 ‘너무 재미있다’고 하면서 작업해 본 적이 없다”며 “지금 쥐어짜는 것과 7∼8년 전에 쥐어짜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 그때는 하고 싶던 말이 있는데 스킬이 부족해서 쥐어 짜낸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진짜 할 말이 없다”고 털어놨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