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은 지난달 말 부산에서 열린 ‘2022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결승전에서 로열 네버 기브업(RNG)에 2대 3으로 패배했다. T1 최성훈 감독은 경기 후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블루 사이드를 세 번 고르지 못한 게 패인”이라고 말했고, 이는 “승자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낳았다.
14일 서울 강남구 T1 사옥에서 최 감독을 만났다. 화상 인터뷰에서 그처럼 말했던 이유를 질문했다. 아울러 많은 화제를 낳았던 결승전 5세트 밴픽에 대한 의견, 일부 팬들의 코치진 교체 요구에 대한 생각 등도 물어봤다.
-MSI 결승전 패배 이후 약 보름 만이다. 팀 분위기는 충분히 환기했나.
“결승전에서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앞으로 중요한 대회들이 남아있다는 데 집중했다. 2022시즌은 이제 겨우 절반이 지났을 뿐이다.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시즌과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을 잘 치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선수들이 크게 낙담하지 않고, 다시 앞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감독으로서 격려하고자 노력해왔다. 이제는 선수들도 앞을 보고 달려가는 중이다.”
-국제대회 우승트로피를 코앞에서 놓쳤다. 선수들의 멘탈 타격이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
“타격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경기에서 이기고 싶어한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서 경기에 임한다. 우리 선수들도 결승전에서 패배했을 당시에는 분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앞날이 밝은 선수들이다. 앞으로 더 잘하면 된다. 선수들끼리도 서로 격려했다. 다음에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MSI 결승전이 숱한 화두를 낳았다. 일부 팬들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최 감독이 “블루 사이드를 세 번 고르지 못해서 졌다”고 말한 것에 대해 “상대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 생각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나.
“나는 현역 시절부터 ‘이긴 쪽에는 이길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상대가 우리보다 더 나은 부분이 있어서 이겼다는 건 기본적인 얘기다. 여러 명이 함께하는 인터뷰고, 대기 시간이 길었던 만큼 짧게 답변하고자 했다. ‘상대가 우리보다 잘했고, 우리가 상대보다 부족해서 졌다’는 당연한 사실은 생략한 채로 얘기했다.
진영 선택이 분명 결승전 경기 내용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패인이 있었다. 컨디션 관리가 미흡해 선수들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지 못했다. 밴픽이나 인게임 전략 수립 측면에서도 보완할 점이 있었다. 짧은 인터뷰 시간을 고려해 챔피언이나 전략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대신 짧게 함축해 얘기하고자 했는데, 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
-진영 선택 외에 T1이 RNG보다 부족했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일까.
“게임의 준비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우리가 잘하는 것을 더 갈고 닦는 준비이고, 둘째는 상대를 말리게 만드는 준비다. RNG가 이 중 두 번째 준비를 더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팀의 메타 픽 숙련도가 떨어졌다거나 메타 해석에서 뒤처졌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메타 픽이라는 건 대회 기간에 자주 등장했던 챔피언들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대회 초반에는 다른 팀들과 비슷한 챔피언들을 사용했던 거로 기억한다. 상위 라운드부터는 상대의 스타일에 맞춰 챔피언들을 사용했다. 메타 적응을 못 했다고 보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제 판단으로는 T1이 가진 환경 내에서 최선의 플레이를 했다.”
-결승전 마지막 세트 밴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억울한 점은 없나.
“결과로 얘기해야 하는 자리이므로 억울한 부분은 없다. 같은 밴픽을 해도 이겼으면 좋은 밴픽이고 졌으면 나쁜 밴픽이다. 패배했으므로 억울한 점은 일절 없다. 다만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을 설명해 드릴 수는 있다. 밴픽은 경기 전 회의를 포함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만든다. 선수 의견을 강하게 반영할 때도 있고, 코치진의 의견을 많이 반영할 때도 있다. 경기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이번 결승전 5세트 밴픽은 대회를 치르며 모은 데이터, 스크림 데이터, 앞선 네 세트를 통해 얻어낸 정보, 현재 선수들의 컨디션과 상대의 플레이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해 최선이다 싶은 것으로 짰다. 특정 챔피언을 밴하거나 뽑은 이유를 자세하게 말씀드리긴 어렵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승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판단한 밴픽을 짰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일부 팬들은 감독·코치 교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감독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나는 T1의 감독이지만 동시에 팀을 꾸려나가는 단장의 역할도 맡고 있다. 팀이 감독을 교체한 작년 서머 시즌 2라운드쯤부터 선수단 구성과 기용, 코칭스태프 역할분배 등을 담당해왔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어떤 선수들로 팀을 꾸리고, 어떤 코치진을 구성해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등을 생각해왔다. 그 결과 작년에는 LCK 서머 시즌 준우승과 롤드컵 4강 진출을 기록했다.
스토브리그 동안에도 팬분들의 우려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 탑라이너 영입이나 코치진 보강을 바라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현재의 구성이 옳다고 생각했다. 국내대회와 세계대회에서 잘할 수 있는 팀을 구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스프링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대회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향후 롤드컵이나 다른 무대에 나간다면 더 강한 팀으로 성장해 MSI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우리 코치진이 그걸 해낼 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코치진 교체를 원하시는 분들의 우려가 어떤 것인지는 잘 알겠으나, 현재 구성원들을 믿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코치진 교체가 아닌 보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능력의 소유자가 눈앞에 딱 나타난다면 보강할 것이다. 하지만 코치진 보강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코치를 만나고, 대화를 나눠봤으나 아직까지는 팀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은 분이 없었다. ’코치진 보강 없이는 롤드컵 우승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더 많이 물색해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코치진으로도 충분히 롤드컵 우승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MSI 참가 팀들은 대체로 서머 시즌 초반 적응을 어려워한다. 팀이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고 보나.
“T1은 MSI 일정을 소화하느라 상대적으로 이번 패치 버전의 연습 시간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 대회 경험이라는 값진 자산을 얻었다. 시즌 초반에는 약간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대회가 중반부를 넘어서면 오히려 강점을 갖게 될 것이다. MSI를 통해 배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 상대의 플레이를 말리게 만드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서머 시즌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이 될 거로 예상하나.
“키워드는 ‘패치’가 될 것이다. 12.10패치로 게임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다음 패치에서도 바뀌는 바가 꽤 많다. 앞으로도 패치 때문에 게임의 양상이 많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젠지와 담원 기아가 가장 까다로운 경쟁자가 될 것이다. 다른 팀들도 두 팀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LCK는 수년간 LPL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두 리그 간 격차가 크다고 보나.
“LPL 팀들과는 시즌 중에도 스크림을 하고 있고, 작년에 롤드컵에서 일부 팀들과 실전에서 맞붙기도 해봤다. 엄청난 실력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LPL이 연이어 우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앞서나가는 부분이 있다. 다만 따라잡을 만한 격차라고 생각한다.”
-국제대회 선전을 위해 LCK도 LPL처럼 다전제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팀이 다전제를 치러본 적이 없어서, 또는 다전제 경험이 부족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일리 있는 지적이겠다. 하지만 상위권 팀들은 대체로 다전제 경험이 충분한 편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전제에 약한 게 아니라 그냥 약한 거다.”
-추가로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T1을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워낙 많으시다. 저희를 비판하시는 건 언제든 환영한다. 그러나 간혹가다 과도한 비난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비판해주시거나, 응원을 보내주시면 좋겠다. 그러면 저희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