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손톱 밑 가시 이어 모래주머니…규제개혁 이번엔?

입력 2022-06-13 06:00 수정 2022-06-13 06:00

역대 정부들이 집권 초기마다 외친 ‘규제 개혁’은 정권 말로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윤석열정부 역시 “기업을 힘들게 하는 모래주머니를 없애겠다”고 대대적 규제 개혁을 예고했다. 다만 이전 정부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실패 원인을 돌아보고 규제 개혁 청사진을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경제 분야 주요 과제는 부총리인 제가 직접 팀장을 맡고, 경제장관들께서 함께 참여하는 ‘경제 분야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를 이달 중 출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기업들이) 모래주머니를 달고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뛰기 어렵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규제 개혁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정부는 경제정책방향의 핵심 어젠다로 규제 개혁을 제시할 전망이다.

규제 전봇대·손톱 밑 가시·모래주머니…현실은?
우선 경제 분야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슬로건으로 삼았다. TF에는 현장애로 해소, 환경, 보건·의료, 신산업, 입지 등 5개 작업반을 구성하고 분야별 중요 과제를 발굴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법인세 인하와 기업 승계 관련 세제 개편, 주 52시간제 유연화,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 국내 복귀) 지원 확대, 투자 걸림돌 제거, 첨단산업 조세·재정지원 확대 등이 거론된다.

기업을 옥죄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겠다는 목표지만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 정부들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규제 개혁 과정이 생각만큼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아서다. 앞서 이명박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말했고, 박근혜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규제프리존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지난 정부들의 규제 완화 법안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4월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새 정부의 규제 개혁에 대해 ‘기대한다’는 응답은 24.6%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 24.0%와 비슷했다. 규제개혁 성과에 불만족한 기업들은 해당 분야 규제 신설·강화(25.8%), 핵심 규제 개선 미흡(24.7%) 등을 이유로 지적했다. ‘보이지 않는 규제 해결 미흡’(19.1%), ‘공무원의 규제개혁 의지 부족’(18.0%) 등도 원인으로 꼽았다.

경직된 관료 사회·첨예한 이해관계 극복이 과제
규제 개혁이 매번 용두사미식으로 마무리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관료 사회의 습성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부작용 등을 들었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13일 “규제를 없애면 공무원들이 ‘도장 찍을 일’이 없어진다. 공무원들의 권력이자 권한을 빼앗게 되는 것”이라며 “규제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법제를 바꾸거나 없애야 하는데 그러면 정부 부처 내 과나 국이 없어지는 단계까지 간다. 이를 막으려고 하다 보니 규제가 계속 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가 사라지면 담당 공무원의 영향력도 줄어들기 때문에 관료사회에서는 규제 개혁을 반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없애자고 말해도 실제 법을 집행하는 일선 공무원들이 소극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책임질 일’이 생길까봐 규제 완화에 속도감을 내지 못하고 결국은 ‘없던 일’로 만든다는 것이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가 출범하면 이에 따라 규제가 신설되기 때문에 규제 개혁이라는 구호가 반복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준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규제라는 게 해가 지날수록 머리카락처럼 계속 늘어난다. 일정 주기별로 계속 다듬어 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규제 하나를 풀면 또 다른 규제가 생길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규제를 푸는 게 실익이 크다면 계속 규제 개혁 작업을 해나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신설된 규제로 서비스 확장을 못 하는 사업으로는 공유 숙박 서비스나 미용·의료 플랫폼, 택시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2018년 10월 서비스를 시작한 ‘타다’는 승합차를 기반으로 한 택시 서비스로 1년여 만에 100만명이 넘는 이용자를 모았다. 하지만 택시업계는 타다가 ‘무허가 운송 사업’이라고 반발했고, 정부와 국회는 타자금지법을 추진해 2020년 3월 통과시켰다. 결국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는 기존 택시만 살아남았고, ‘택시 대란’까지 불렀다. 법률 플랫폼 ‘로톡’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미용·의료 플랫폼 ‘강남언니’는 대한의사협회와 각각 충돌하고 있다.


정권 초에는 기업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위해 규제 개혁에 대한 약속을 일삼지만, 첨예한 갈등을 빚는 사안의 경우에는 결국 정부가 목소리가 큰 쪽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식의 패턴이 반복되기도 한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해 관계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규제 개혁 동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장은 “정권 초에는 규제 개선이 나름 잘 추진되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런저런 사고들이 발생하면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며 “지지율의 추이에 따라서 정부가 반응하면서 갈등 요소가 발생했을 때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받아주는 쪽으로 가다 보면 규제 개혁이 힘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창고에 쌓여 있는 규제 개혁 안건들이 워낙 많다. 이해관계자 간 갈등도 그렇고, 입법 과정에서도 좌초되는 경우도 상당수”라며 “이번 정부에서 세게 드라이브를 거는 만큼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이종선 권민지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