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 침범 사망 노동자… 대법 “산재로 볼 수 있다”

입력 2022-06-11 00:04
국민일보DB

노동자가 업무 수행을 위해 운전하던 중 교통법규를 위반해 사고를 내고 숨졌더라도 ‘법규 위반’만을 이유로 업무상 재해 인정을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교통법규 위반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인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박정화)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의 남편 B씨는 삼성디스플레이의 1차 협력사인 에스엔에프에서 근무하던 2019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B씨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1캠퍼스에서 진행된 협력사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B씨가 숨지자 A씨는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지급해 달라고 공단에 요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B씨가 중앙선을 침범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숨져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지급을 거부했고, 이에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며 A씨 부인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2심에선 “중앙선을 침범한 과실은 운전자에게 주어진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것”이라며 “그것이 의도적인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중대한 법규위반에 해당해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나왔다. A씨의 청구는 기각됐다.

대법원은 “사고와 A씨의 사망이 범죄행위가 직접 원인이 됐다고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노동자의 업무 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산업재해보상법 37조 2항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중앙선 침범의 이유가 확인되지 않은 점과 A씨가 1992년 운전면허를 딴 뒤 교통법규를 위반하거나 교통사고를 낸 일이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의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사망’이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기준도 새롭게 제시했다.

교통법규 위반이 사망의 원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급여 지급 대상에서 제외해서는 안 되고, 사망의 ‘직접 원인’인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노동자의 보장 범위를 한층 넓게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노동자의 ‘운전 중 사망사고’가 업무 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설령 중앙선 침범으로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도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며 사고 경위와 운전자의 운전 능력 등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원태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