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 붕괴참사 1주기…악몽은 현재 진행형

입력 2022-06-10 10:42

“잊지 않겠습니다. 안전한 광주를 만들겠습니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재개발 4구역 철거건물 붕괴 참사가 9일 1주기를 맞았다. 광주시와 동구가 추모제를 개최했지만, 피해자 유족들은 여전히 그날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오후 4시쯤 붕괴 참사 현장에서 열린 추모제에는 유가족 30여명과 이용섭 광주시장, 임택 동구청장, 시·구의원과 시민 100여명 등이 참여했다. 추모제는 식전공연, 추모 묵념과 기도, 추모사, 추모시 순으로 이어졌다.

북소리가 울리고 피아노 반주와 함께 식전공연인 진혼의 무대가 시작되자 유가족과 추모객들은 노란 종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눈물을 닦아냈다. 붕괴 참사가 발생한 오후 4시 22분에 맞춘 침묵의 묵념이 진행되는 동안 사고현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이진의 학동 참사 유가족 대표는 추모사에서 “1년이 지났지만, 죄인의 마음과 울분은 여전히 그대로”라면서 “참사의 제물로만 고인들을 추억할 수 없다”고 울먹였다.

그는 또 “학동 참사 7개월 만에 다시 화정아이파크 붕괴 참사가 발생했다”며 “당연히 주어질 것이라 믿었던 추모 공간도 여러 이유로 난항에 봉착했다”고 밝혔다.

황옥철 유가족 공동대표는 “큰 부지, 기념비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와서 쉴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으면 한다”며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지자체가 그동안 3차례 추모공간 조성을 위한 회의를 했지만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사고 이후 시민 안전을 제1순위로 삼았으나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라 안타깝다. 다시는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부실공사 척결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임택 동구청장은 추모사에서 “붕괴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참담함과 슬픔의 시간은 어떤 절망보다 크고 깊었을 것”이라며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지역민의 생명의 지키지 못한 점 온 마음으로 사죄드리고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추모제 이후에도 유가족과 시민들은 한참 동안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지난해 6월 9일 광주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에서는 철거 중이던 지상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인근 정류장에 정차한 ’운림 54번’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자녀 생일상을 준비하러 시장에 다녀오던 어머니와 가족들의 병문안을 다녀오던 시민 등이 이 사고로 무고하게 희생됐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는 학동 참사 1주기를 맞아 시민안전을 볼모로 한 건축현장의 불법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대산업개발 퇴출·학동 화정동 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는 이날 성명서에서 “가족들을 잃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과 사고 후유증으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계실 부상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며 “참혹한 날을 잊지 않고,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광주를 만들어가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다해가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책위는 “광주공동체는 책임자들의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 없어 여전히 학동 참사의 충격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책임자들은 사고 원인에 대한 국토부의 공식 조사조차 부정하면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실제 지난해 9월부터 20여 차례 열린 재판에서 철거공사 관련자들은 불법 재하도급 여부를 두고 서로에게 과실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공사인 HDC 현대산업개발은 “불법 재하도급이 이뤄진 지 몰랐다”고 발뺌하기에 바쁘다. 하도급사인 한솔기업 등은 “현대산업개발의 지시를 받아 작업했을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런데도 광주에서는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 7개월만인 지난 1월 11일 신축 중인 화정 아이파크 201동 붕괴사고가 다시 발생해 노동자 6명이 숨졌다.

40여 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대책위 관계자는 “학동 붕괴 참사 이후 후진국형 안전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국회에 제출된 20여 개의 관련 법안들은 여·야 정쟁에 밀려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