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무실서 변호사 등 6명 참변…문 막고 방화 가능성

입력 2022-06-09 18:33 수정 2022-06-09 19:50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사무실 빌딩에 있던 사람들은 9일 말 그대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며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이날 오전 10시55분 발생한 불은 22분 만에 완전 진화됐으나 한 사무실에서만 7명이 사망하고, 같은 건물의 40여명이 연기를 흡입하는 등 피해가 컸다.

경찰은 용의자가 사무실을 막은 뒤 인화물질을 뿌리고 방화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용의자가 방화 뒤 분신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경찰은 용의자가 오전 10시 53분쯤 혼자 마스크를 쓴 채 흰 천으로 덮은 물체를 들고 건물에 들어서는 CCTV 화면을 확보했다. 경찰은 또 용의자가 해당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간지 23초만에 불꽃이 이는 것을 확인했다.


사망자 7명이 발생한 203호와 같은 층에 있던 한 변호사는 “대피 과정에서 봤는데 최초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변호사 사무실 문이 열려 있었다”며 “방화범이 문을 연 채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지른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옆방에 있던 다른 변호사는 “폭발음과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듣고 바로 문 쪽으로 달렸는데 문 손잡이가 뜨거워 몸으로 문을 밀치고 탈출했다”며 “사무실에는 나를 포함해 직원 5명이 있었는데 다행히 모두 빠져나왔다”고 전했다. 주변은 현장 수습을 위해 출동한 구급차와 소방차, 취재진이 몰려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불이 난 건물에는 변호사 30여명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병원으로 옮겨진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변호사였다. 불이 나자 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위층 또는 옥상으로 대피했다. 일부는 방독면을 쓰고 탈출했다. 한 변호사는 “20분 정도 공포의 시간이 지난 뒤 소방관들이 건넨 방독면을 쓰고 나서야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용의자는 투자금 반환 소송 진행과정에서 불만을 품고 상대편 변호사 사무실에 방화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2013년 대구 수성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신축사업 시행사에 6억8000여만원을 투자한 뒤 일부 돌려받은 돈을 제외한 5억3000여만원과 지연손해금을 달라며 시행사 및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후 용의자는 지난해 다시 시행사 대표를 상대로 약정금 반환소송을 냈는데,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다. 시행사 대표의 변호인은 이날 불이 난 사무실의 변호사가 맡았다.


용의자를 제외한 사망자 6명은 이 변호사 사무실 소속 변호사 1명과 직원 5명이다. 사건이 발생한 사무실은 변호사 2명이 합동으로 개업한 곳이다. 용의자 관련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는 지방 출장으로 자리를 비워 화를 면했다. 한 관계자는 “용의자가 재판에서 진 뒤 앙심을 품고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몇 번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