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체중에 집착하는 아이

입력 2022-06-09 13:08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해 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온 청소년들에게 다이어트는 일상이 됐다. 일부러 구토를 유발하고, 다이어트 약제를 사용하여 체중을 줄이려는 사람들도 늘어만 간다.

고등학교 2학년인 여학생 J는 초등학교 4학년 경 부모가 불화가 생겨 마음이 우울해지면서 식욕이 갑자기 늘더니 체중이 급격히 늘어났다. 남자 친구들은 ‘뚱돼지’ ‘삼겹살’이라며 놀려댔고, 여자 친구들도 J를 멀리하여,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견디다 못한 J는 부모에게 졸라서 전학까지 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다이어트 전문 회사에 등록하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체중이 주니 이목구비도 또렷해지고, 체형도 달라졌다. 주변에서도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듣게 된다. 이에 고무된 J는 고등학교 1학년 친구들과 함께 다이어트 클럽을 만들어 체중 줄이기 경쟁을 시작했다.

이렇게 친구들과 소속감도 생기니 자신감도 느는 듯해서 더욱 살빼기에 매진했다. 하지만 식사를 극도로 제한하다 보니 때로는 미친 듯이 폭식을 하게 되어, 음식물이 목에 차오를 정도로 먹게 되고, 살이 다시 찔까 하는 두려움에 먹은 음식을 토해버리게 되었다. 한동안 부모도 이를 모르고 있었지만, 침대 밑이나 책상 서랍에 숨겨져 있는 빵이나 과자 껍질을 보고 깜짝 놀라 관찰해 보니 화장실에 몰래가 토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속도 아프고, 체력도 고갈되어 공부를 하거나 놀 의욕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나는 뚱뚱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체중 조절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성인이건 청소년이건 다이어트가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이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정신질환으로 분류한다. 폭식 장애의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반복적인 폭식 2. 체중증가를 막기 위해 구토, 하제, 이뇨제 사용, 과도한 운동 3. 3개월간 주 1 회 이상, 폭식, 보상행동 발생 4. 자기 평가에 있어 체중, 체형이 지나치게 영향을 미침 등이다. J도 이런 진단기준에 부합하는 상태였고, 부모도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J는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고 다이어트를 멈출 수가 없었다.

J와 같은 경우 이를 질병이라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치료에 있어 치료에 대한 동기 부여가 가장 힘든 단계이고,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하지만 폭식과 구토를 그만 두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은 갈등을 초래할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계속 그렇게 하면 결국 넌 죽을 거다’ ‘이 아버지는 너 때문에 속이 썩어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다’와 같은 위협조의 말은 거부감만 불러일으킨다. 이 단계에서 돕기란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 상황에서도 마음에 대한 공감을 진지하게 표현하고 조용히 어려움을 잘 들어준다면 마음속의 거부감이 줄어든다.

체중증가에 대한 공포심을 들어주자. 과거에 외모에 대한 놀림과 체중 감소에 따른 칭찬과 관심은 체중 감소에 지나친 행동을 유발한 강화요인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이를 받아들여 주는 게 좋다. 또 폭식 후에 오는 자책감과 공포심은 J에게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또 구토를 유발하여 음식물을 토했을 때는 이런 감정이 해소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인정해 주자. 이런 보상이 없다면 안 좋다는 걸 뻔히 아는 행동을 왜 멈출 수 없겠는가?. 긍정적인 보상이 있기에 그 행동이 유지 되지만, 그 보상을 사실 그 순간 일시적일 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더 큰 자책감,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도와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유명한 이솝우화가 있지 않은가? 나그네의 모자를 벗기는 것은 태풍과 같은 강력한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었던 것처럼, 위협하는 말은 오히려 자기의 생각이나 행동에 집착하게 한다. 따듯한 햇살로 자신의 생각이 느슨해지고 치료에 대한 동기가 생겼다면, 늦기 전에 전문가를 찾는 게 좋다. 하지만 전문적인 치료 중에도 가족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