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서울대 교수가 국민참여재판 결과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징역 6개월을 구형했지만 배심원단이 무죄를 평결했고, 재판부도 “의심을 배제할 만큼 범죄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재판장 김승정)는 8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A씨(56)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 B씨가 사건 직후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종합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유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씨의 요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서 배심원단도 이날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다.
A씨는 2015~2017년 학회 참석을 위해 해외 출장에 동행한 제자 B씨의 신체를 만진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구체적으로 B씨의 정수리를 만지거나, B씨의 치마를 들춰 허벅지 안쪽의 화상 흉터를 만졌다는 혐의 등이었다. B씨가 억지로 팔짱을 끼게 했다는 혐의도 있었다. A씨 측은 B씨의 머리를 만진 사실은 있지만 지압한 것이었다고 했고, 흉터를 만진 건 화상을 걱정해 붕대 부분을 짚어본 것이었다고 했다. 팔짱에 대해서도 B씨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 것이라고 했다.
B씨는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피해를 호소했다. B씨는 “이 사건의 본질은 권력형 성범죄”라며 “저에게 자신을 아빠라고 생각하라고 한 이 사람이 더는 교육자여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사제기간임을 고려하면 B씨가 피해를 제대로 주장하기도 어려웠고, B씨가 오래도록 고통받아 왔는데도 A씨가 범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정수리를 만진 행위에 대해서는 “B씨의 불쾌감은 인정되지만 강제추행죄에서 정하는 추행으로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른 혐의들에 대해서는 B씨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봤다. 사건 직후 B씨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등에 비춰 보더라도 “진술만으로는 범죄가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B씨는 2019년 2월 A씨로부터의 피해를 주장하는 대자보를 학내에 게시했고 같은 해 A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이어 서울대가 교원징계위원회 결과에 따라 A씨를 해임했다. A씨는 최후진술에서 “하지도 않은 일을 증명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했다. A씨는 “이번 일로 인생에 대해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깊은 회의와 환멸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