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언론 기사에 ‘미 출산율, 한의 2배인 이유’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읽었습니다. 한국보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미국의 출산율을 소개하고 2020년에 비해 2021년에는 합계출산율이 1.64에서 1.66으로 증가한 것도 지적했습니다. 기사는 그 이유로 일자리를 꼭 집었습니다. 분유 값, 기저귀 값 보조해 준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지적도 타당한 지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양육비나 은퇴 준비 등 여러가지 삶의 비용을 따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한국에 비해 미국의 출산율이 높은 이유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육아 후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짚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압박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 미국 문화였습니다.
미국에서 40년을 살고 자식 낳아 키우고, 이제 손주를 맞아 손주들의 육아 양육 취학 등을 내다보고 있는 입장에서 약간 다른 관점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특히 오랜 기간 미국 주류 집단을 대상으로 미국 기준으로는 대규모에 속하는 영유아원을 운영하면서 수천 명의 부모들과 어린 자녀들, 그들의 가족들과 십수년에 걸친 가족들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본 경험에서 발견한 미국의 높은 출산율에 대한 관찰입니다.
미국이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 박힌 가정 중심의 가치관입니다. 미국에서는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고 양육하고 공부시켜 사회에 내보내고 그들을 통해 손주들을 보고 손주들의 앞날에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여기는 가치관이 뿌리 깊습니다. 이것은 경제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정량화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40년을 살아보고 수많은 미국 가정들의 속살을 들여다 보고, 양육의 전반적인 과정을 속속들이 살펴 본 경험에서 내리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결론입니다. 보통의 미국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방법으로 출산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답을 할 것입니다. “왜 출산을 결정했는가?” “왜 자녀를 낳으려고 하는가?”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다음과 같이 답할 것입니다. “애가 이뻐서” “아기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 아버지가 나를 키운 것처럼 나도 내 아들을 멋진 남자로 키우려고.” 대부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목적 자체로서 가치있는 선택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미국 사회는 놀라울 정도로 가정 중심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종종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가정 중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가정 중심이 아니라 가족 중심이며 관계 중심이 아니라 혈연 중심이고 핵가족 중심이 아니라 대가족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보다 대가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족 집단주의에 가깝습니다. 유교적인 가치관에 따라 엄하고 경직된 가족 질서를 세웠습니다. 조선시대 통치 조직과 가족 안에 세워진 위계 질서는 정도전 류의 유교 사상에서 의도적으로 일치합니다. 동아시아의 수천년 역사 속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정치 철학 중에서 조선이 선택한 사상은 군사부 일체로 요약되는 국가-가정-교육의 일체화입니다. 가장 효율적인 통치체계로서 왕과 가부장, 선생을 머리로 삼아 중앙집중식 상명하복 방식의 계급 구조를 500년 동안 정착시켰습니다. 전 국민을 동일한 철학으로 의식화하기 위해 요구되는 전 국가적 교육 제도는 스승의 스승으로 이어지는 학파의 조직으로 가능했습니다. 스승의 스승은 왕과 같고 아버지와 같은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왕을 백성의 아비로, 왕비를 백성의 국모로 삼아 국가 전체를 가족의 개념으로 조직화했습니다. 혈연으로 엮인(사실은 혈연보다 족보라는 법적 문서로 엮인) 대가족의 위계 질서는 국가 위계 질서에 일치시켜 가부장은 왕과 같은 지위와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조선의 유교적 통치 질서에는 한 개인이 또 다른 개인을 몸과 마음과 정성과 생명을 다해 사랑하는 인간 본연의 본능에 따르는 필레오적인 사랑을 제거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 사람들이 가정 중심이라고 할 때마다 그 의미는 가문을 위해서 또는 대가족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쁘띠 집단주의를 의미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혈연을 통해서 또는 언약(입양이나 결혼 같은)을 통해서 맺어진 한 개인과 또 다른 개인 사이에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가정 중심 사상이 한국 사회에서는 흔치 않습니다.
미국 사회는 놀라울 정도로 가정 중심적입니다. 핵 가정 중심입니다. 미국의 부부관계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아비와(남편의 지위도 군사부 일체에 뜯어 맞췄습니다) 지어미(이것은 낮추는 말입니다)의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평생 헌신한 사람들의 관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이혼율이 낮다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이혼이 쉬운 사회라 할지라도 그 사실이 미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부관계를 변색시키지 않습니다(사실 이혼율은 유교사상과 서구 사상의 차이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떤 사회든 이혼율은 여성의 경제적인 자립도와 가장 직결되는 현상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사랑하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서 서로 목숨도 버릴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관계입니다.
미국의 가정 중심적 생활 방식은 핵가정 중심이기 때문에 미국 가정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외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겪어본 미국 가정들, 특히 여러 세대에 걸쳐 미국에 뿌리 내린 가정에서 추구하는 가족 관계는 놀랍게 친밀하고 진하고 깊습니다.
미국 사회는 정치인, 경제인, 정치 행태와 시장 경제 운용에 이르기까지 가정 중심의 가치관을 높이고 존중하고 숭배합니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 덕목은 “우리 자녀 세대를 위해서”입니다. 미국의 치안 수준을 높이고 범죄율을 낮추려는 정책 토론은 항상 “우리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세금과 감세에 대한 토론은 항상 “우리 자녀 세대의 번영과 부담”을 중심으로 벌어집니다. 미국 시민들이 가장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참여하는 정치 참여는 기초 단체의 공교육 행정입니다. 수시로 벌어지는 군 단위 교육위원의 공청회는 한가한 적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카페에서 벌어지는 지역 정치의 핵심은 자녀 양육, 자녀들의 안전, 대학 진학을 위해 공교육 수준 향상 등 가정 중심입니다. 미국에서 지난 수십년간 정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정치적 이슈로 동성애 이슈, 세금 이슈, 중동 전쟁과 파병 등이 있지만 이런 정책 토론은 항상 “우리 자녀들”에서 시작합니다.
미국에서 주목받는 지도자들은 말과 행동으로 가정 우선을 드러냅니다. 촉망받는 의원이 은퇴하는 이유가 청소년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성공한 지도자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을 대라고 하면 종종 아버지나 어머니를 말합니다.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읽은 위대한 인물을 언급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유교적 문화에서 자녀는 가문에 기여하는 입신양명해야 할 가문의 자산에 불과합니다. 입신양명이 인생의 목표인 사회에서 자녀 양육의 보람은 자녀의 입신양명입니다. 심지어 부모와 자녀의 존재 이유가 입신양명이 됩니다. 미국에서도 극성 부모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미국인들은 자녀가 생겨서 생활이 어려워지면 생활 수준에 맞는 지역과 경제 수준에 맞는 공동체에서 지나치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이웃들과 같은 수준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미국에서 출산과 자녀 양육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사회 구성 요건 중 첫 번째로 꼽는 것은 공교육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든 자녀들에게 초중등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신생 민주주의 실험국가인 미국이 완정국가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필수적이 되도록 판단했습니다. 건국 이전부터 마을과 동네마다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그래머 스쿨이 제도화돼 미국의 공교육 체계인 “퍼블릭 스쿨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시민 참여로 이루어지는 기초단체 단위의 퍼블릭 스쿨은 부모의 경제적인 수준에 맞는 교육을 제공합니다.
9·11 테러 소식을 라디오에서 들은 어떤 60대 이민자가 뉴스를 들으면서 속으로 이렇게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이 나라를 누가 공격하고 있다. 내가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에라도 나가야겠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30대 초에 이민을 와서 온갖 험한 일을 다 하면서 딸 자식 둘을 키웠습니다. 미국이 공격 당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새벽에 일하러 나가서 해지고 돌아오는 부모 밑에서 자라서 좋은 직장 잡고 시집 가서 애 키우고 있는 딸들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들 학교 다니는 12년 동안 부모가 먹을 것도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아침 일찍 스쿨버스가 애들을 데려가 공부시키고 운동시키고 점심먹이고 스쿨버스로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학자금 융자와 장학금으로 명문 공립대학에서 공부하고 이민자의 자식으로서 번듯한 직장에서 인정받으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 이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를 누가 공격한다고요. 나도 무르게 주먹이 쥐어지면서 자원 입대라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모인 이민자들이 미국을 생명 바쳐 지켜야 할 조국으로 여기는 계기는 바로 자신의 가정 때문입니다. 미국 이민 초기에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정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도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내 자식들에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미국에서 가정과 자녀는 목적이지 수단이 아닙니다. 경제적 여건에 따라 할 수 있고 없고를 정하는 경제 활동의 선택지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요 목적이요, 행복이라고 믿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습니다. 미국의 출산율은 바로 가정 중심주의의 결과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지적하는 출산율 저하의 원인들 – 주택난, 취업난, 양육 비용, 교육 비용 – 등은 미국에서는 출산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라 출산을 선택했기 때문에 팔 걷어 부치고 해결해야 할 종속 변수입니다.
미국의 가정중심주의가 모든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이 파괴되는 현상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중심적 가치관은 스스로 지킬 여력이 없는 사람조차도 인정해 주는 사회적인 우선 가치입니다.
◇장세규 목사=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원로, 국제 NGO 연합회 자문역, 북한 인권운동, 구호활동, 정신대 결의안 등 다양한 미국 입법 지원 활동.
[기고] 미국의 출산율은 왜 한국보다 높은가…미국서 40년 살아온 한 목사의 생각
입력 2022-06-08 18:40 수정 2022-06-09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