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신탁약정을 맺어 남의 명의로 토지를 샀다면 20년간 점유했다고 해도 부동산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숨진 A씨의 유가족이 B씨 등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1978년 아버지로부터 논 6050㎡를 상속 받았다.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지 않고 있던 A씨는 1997년 2월 이 땅을 농어촌공사에 팔았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B씨와 명의신탁 계약을 맺고 B씨의 명의로 다시 이 땅을 사들였다. B씨 이름으로 농어촌공사 대출을 받아 매매대금을 치르고, 대출원리금을 갚을 돈은 A씨가 B씨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이었다.
농어촌공사는 두 사람 사이 명의신탁을 모르는 상태에서 B씨와 매매계약을 마쳤다. 이후 해당 토지의 소유권은 몇 차례 변경됐지만, 20여년간 이 논을 실제로 점유하며 농사를 지은 건 A씨였다. 2018년 2월 A씨가 사망하자 유족들은 “A씨의 점유취득시효 20년이 완성됐다”며 소유권 이전등기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20년간 소유의 의사를 갖고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한 자는 등기를 통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고 규정한 민법에 근거한 주장이었다.
하급심은 A씨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점유자에게 추정되는 소유의 의사는 사실상 소유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지 반드시 등기를 수반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점유취득시효가 인정되려면 점유자의 자주점유(자신이 소유한다는 인식 및 의사를 갖고 하는 점유)가 인정돼야 한다”며 “A씨는 명의신탁자로서 자신이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다는 사정을 잘 알면서 토지를 점유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A씨가 부동산실명법에 따라 명의신탁자는 소유권 취득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다른 사정이 없는 한 A씨의 점유는 소유권 의사가 없는 타주점유라고 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