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연기, 관성대로 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

입력 2022-06-08 16:11
영화 '브로커'에서 소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지은.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제는 가수 아이유만큼이나 배우 이지은도 자연스럽다. ‘드림하이’ ‘최고다 이순신’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등 여러 편의 드라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온 이지은은 첫 상업영화 출연작 ‘브로커’로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내가 과연 송강호 선배님 앞에서 기절하지 않고 면대면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런 경험은 연기를 계속한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지은은 ‘브로커’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대선배 송강호와의 작업을 다시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송강호 선배님과는 연기하기 직전까진 가장 떨리고 시작하면 가장 안 떨렸다. ‘이렇게 연기를 지켜봐 주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면 나도 더 잘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번 작품에서 이지은은 주인공 소영 역을 맡았다. 소영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 미혼모다. 이지은은 “다음 작품에선 엄마 역이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 시점에 소영 역을 제안받았다. 출산을 경험해 본 사람, 그런 고비를 넘긴 사람의 감정선을 이해해보고 싶었다”며 “연기를 했지만 여전히 실제론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전부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또 다른 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지은은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오랜 팬이다. 그는 “감독님을 많이 귀찮게 했다. 대본에 나와있지 않은 소영의 과거, 소영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선택에 후회가 없는 인물인지 계속 물었는데 그 때마다 애매한 지점 없이 대답해주셔서 많이 의지했다”며 “첫 상업영화이기도 하고, 어려운 역할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아무 것도 보여드린 게 없는데 큰 역할을 맡겨주셔서 걱정이 많았다”고 돌이켰다.

칸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니스 코트다쥐르 국제공항에 도착한 이지은에게 프랑스 팬들이 몰려든 장면은 화제가 됐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지은은 “프랑스에 팬이 있을 줄 몰랐는데 많은 분들이 환대해주셔서 놀라고 얼떨떨했다. 몰래카메라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지은은 “레드카펫에서 팬들이 CD에 사인해 달라고 할 때는 ‘CD는 어떻게 사셨을까’ ‘직구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짧게 스쳤다”며 “제가 유럽에서 공연한 적도 없고, 퍼포먼스를 화려하게 하는 가수도 아니다. 언어에 많이 기대어 음악을 하는 편이라 언어의 장벽이 있을텐데 제 음악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음악도 만들고 연기도 하는 이지은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연기하면 살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 건드려진다. 사람이 어느 시점부터는 관성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며 “사회 이면에 대한 생각, 이번 영화에서처럼 미혼모나 엄마에 대한 생각은 연기가 아니면 생각할 기회를 찾기 어려운데, 연기를 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게 좋다. 그게 저라는 사람을 굴러가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배역은 이지은을 ‘가수 아이유로’부터 해방시키기도 한다. 이지은은 “‘호텔 델루나’의 만월은 가수 아이유의 이미지로부터 가지고 올 수 있는 스타일링과 과한 설정들이 있었다면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나 ‘브로커’의 소영은 아이유여선 안되는 인물들이었다”며 “목소리도, 외모도 아이유가 아니어도 될 때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다”고 털어놨다.

연기를 하면 같은 목적을 가진 팀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도 그는 말했다. 이지은은 “ “곡 작업도 팀 단위로 하지만 앨범 프로듀싱을 맡게 된 이후로는 외로운 순간들이 찾아왔다. ‘내게 이 모든 걸 결정할 능력이 있나’ 생각이 들어도 팀원들에게 티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다”며 “드라마나 영화를 할 때는 감독, 작가, 배우에게 명확하게 역할이 주어지는 면이 안정감을 준다. 모르던 사람들이 작품을 하는 기간 동안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같이 간다는 그 느낌이 좋다”고 했다.

소영을 연기하는 건 배우 이지은이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소영이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신을 일부러 넣었다. 이지은은 “어떻게 불러야할지 계산을 많이 했다. 너무 잘 부르면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고 일부러 못 부르는 척하면 작위적일 것 같아 기교를 빼고 음정만 맞추는 느낌으로 했다”며 “영화를 보시고 자장가 신이 인상적이었단 분들이 많았는데 ‘가수니까 잘했겠지’하는 생각을 보태서 좋게 들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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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