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변호한 조카의 살인사건을 ‘데이트 폭력’이라 표현했다가 유족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 제출 서면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다만 이 의원 측은 표현의 경위를 ‘축약적 지칭’이라고 설명하며 재판부를 향해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유족 측은 “사과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고, 준비서면으로 2차 가해를 하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이 의원의 소송대리인은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8단독에 이러한 내용의 준비서면을 제출했다고 8일 밝혔다. 이 의원 측은 서면 서두에서 “먼저 사려 깊지 못한 표현에 대해 원고에게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이번 소송의 원고는 2006년 이 의원의 조카 김모씨의 범행으로 아내와 딸을 잃은 A씨다. A씨도 김씨의 범행 당시 현장에 있었고 김씨를 피해 아파트 5층에서 뛰어내렸다가 중상을 입었었다. 이 의원이 변호한 김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 의원 측은 다만 해당 표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부인했다. 이 의원 측은 “특정 사건을 축약적으로 지칭하다 보니 ‘데이트 폭력 중범죄’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고, 이 표현에는 명예훼손을 구성하는 사실 혹은 허위사실을 담고 있지 않다”고 했다. 또 “언론에서도 살인사건에 대해 ‘데이트 폭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그러므로 피고의 표현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의원의 ‘데이트 폭력’ 언급은 대선 국면이던 지난해 11월 그가 조카의 살인 범죄를 변호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나왔다. 그는 당시 “가족 중 한 명이 과거 ‘데이트 폭력 중범죄’를 저질렀다”며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돼 가족 중 유일한 변호사인 제가 변론을 맡았다”고 페이스북에 적었었다. 이에 A씨는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며 이 의원을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었다.
이날 이 의원의 서면을 송달받은 A씨 측은 즉각 “유족은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A씨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는 “법적인 망언은 이 의원이 해놓고 사과는 왜 대리인이 하느냐” “이 의원이 직접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이 의원 측이 서면에서 책임을 부인하고 “피고가 인권변호사인지 여부는 청구 원인과 무관하다”고 한 것에 대해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 측은 지난달 말 “(이 의원은) 스스로를 인권변호사라 주장하면서도 살인 사건을 ‘데이트 폭력’이라 지칭, 유족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서면을 냈었다.
재판부는 9일 오후 3시30분 이 사건의 첫 변론기일을 열고 양측의 주장을 듣는다.
이형민 임주언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