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5세를 일기로 8일 별세한 방송인 송해의 간판 TV 프로그램은 KBS 1TV ‘전국노래자랑’이다.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35년째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영국 기네스 세계기록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에 등재됐다. 송해는 전국의 시·군을 매주 순회하면서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시민들을 무대에 올렸고, 이 과정에서 ‘다이아몬드의 원석’ 같은 스타들이 발굴됐다.
가수 송가인(36)과 임영웅(31)은 ‘전국노래자랑’ 입상 이력으로 주목을 받고 데뷔해 지금은 톱스타로 성장한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송가인은 2010년 12월 19일 전남 진도 편에서 본명 조은심으로 출연했다. 진도 지산면에 거주하는 25세 극단 단원으로 소개됐고, 오랫동안 단련해온 가창력을 무대에 오르자마자 뽐냈다. 판소리 창법으로 “안녕하세요. 젊은 소리꾼 조은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선배 가수 주현미의 ‘정말 좋았네’를 불렀다.
송해는 노래를 마친 송가인에게 “소리의 본고장에서 소리맛 좀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송가인은 주저하지 않고 판소리 ‘춘향가’의 한 단락인 ‘사랑가’를 불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 방송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송가인은 그해 연말 결선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가수 임영웅은 25세였던 2016년 2월 14일 경기도 포천 편에서 ‘호국로에 거주하는 화장도구 제조업 직원’으로 출연했다. 송해는 “훌쩍하신 남자분”이라며 무대에 오르는 임영웅을 호명했다. 임영웅은 자신을 “포천의 영웅 임영웅”이라고 소개한 뒤 가수 신유의 ‘일소일소 일노일노’를 불렀다. 송가인처럼 이 방송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임영웅은 메달을 목에 걸고 앙코르 무대를 완성했다.
‘전국노래자랑’을 거쳐온 현역 스타를 얘기할 때 여성그룹 오마이걸 멤버 승희(26)도 빼놓을 수 없다. 승희는 11세였던 2007년 1월 7일 강원도 인제 편에서 천천초등학교 5학년생 현승희라는 본명으로 무대에 올랐다.
당시의 승희는 씩씩하게 “트로트공주 현승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곧 가수 박상철의 ‘자옥아’를 불렀다. 전주와 간주에서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안무를 선보이고, 노래하는 내내 표정과 손짓으로 객석을 녹인 초등학생 승희의 끼는 이미 준비된 아이돌 가수로 손색이 없었다.
이들 모두에게 송해는 이제 꿈으로 가득했던 시절의 기억으로 남게 됐다. 1927년 4월 27일생인 송해는 이날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때 황해도에서 월남해 가족과 생이별했고, 송복희라는 본명 대신 방송에서 사용하는 예명 ‘송해’로 살아왔다. 배를 타고 월남하면서 삶이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것 같다는 의미로 ‘바다 해(海)’를 이름으로 사용했다.
송가인은 송해의 부고를 받은 이날 인스타그램에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올랐던 12년 전 사진을 올렸다. 송가인은 “제일 먼저 재능을 알아봐 주셨고 이끌어 주신 선생님. 잘되고 나서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시던 감사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세요”라고 적어 애도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