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19개 가짜 계정 몰표” 미인대회 부정선발 의혹 수사

입력 2022-06-07 18:23 수정 2022-06-10 10:42

국내 한 미인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주최 측 간부가 부정한 방법으로 특정 참가자의 입상을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해 수상자 발표 직후 공익 제보가 접수됐고, 주최 측 내부 감사에서도 의혹 상당부분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주최 측의 감사 결과를 토대로 실제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금전적인 대가가 오고 갔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한 미인대회 수상자 선발 과정에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해 대회 심사위원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했다고 7일 밝혔다.

2018년 시작된 이 대회는 한복을 입고 경연하는 대표 미인대회 중 하나다. 수상자는 한류 문화를 알리는 대한민국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세계 미인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할 수 있다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방송계 진출 등을 모색하는 참가자들이 몰려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행사의 부조리에 대한 공익 제보가 접수된 건 지난해 11월 대회가 끝난 직후였다. 주최 측 간부이자 대회 심사위원인 A씨가 오랜 지인인 참가자 B씨가 수상할 수 있도록 내부 심사정보를 제공하는 등 편의를 제공했다는 내용이었다. B씨는 실제 입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주최측 자체 감사를 통해서도 제기된 의혹이 근거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A씨가 자신이 다니던 교회 지인들을 동원해 인터넷 아이디 119개를 수집한 뒤 B씨에게 제공했으며, 이를 활용해 매일 투표하도록 도운 것으로 조사됐다. 계정 주인의 동의는 얻지 않았다고 한다. A씨가 제공한 것으로 추정된 아이디 비밀번호는 전체가 ‘123123’으로 동일했고, 해당 계정들은 모두 B씨에게 투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내부 정보를 빼돌린 의심도 받고 있다. 감사에서 A씨는 “예선 참가자 대부분이 결선에 진출하기 때문에 예선에서는 힘을 쏟지 말고 ‘크라운’을 최대한 아껴뒀다가 결선 투표 때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크라운은 온라인 투표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포인트다. 크라운을 많이 얻을수록 투표 순위가 올라가는데, 가장 효율적인 득표 전략을 귀띔해준 것이다.

부정행위 사실을 확인한 주최 측은 지난해 12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A씨를 해임했다. 최종결선은 국민투표(30%), 사전심사(20%), 심사위원 점수(50%)로 순위가 결정되는데, 주최 측은 심사위원 점수에서도 A씨가 B씨에게 고득점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다만 B씨의 수상 자격까지 박탈하지는 않고 경고 처분만 내렸다.

해당 의혹은 내부 고발자를 지원·보호하는 ‘서울시 공익제보 안심 변호사’에 접수되면서 경찰 고발까지 이어졌다. 안심 변호사 측 관계자는 “청년층을 상대로 하는 선발대회에서 부정행위가 벌어졌는데도 수상 자격이 그대로 유지돼 다른 탈락자들의 항의가 거세다”며 “대회 입상 경력이 곧 스펙으로 작용하는 만큼 철저한 수사와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