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보낸 아들의 죽음…7년 만에 어머니가 들은 ‘은폐’ 사실은

입력 2022-06-07 15:06
7일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임태훈 소장이 육군 11사단 고 일병 사망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5월 육군 제11사단 소속 고(故) 고동영 일병이 휴가 중 열차에 몸을 던져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소속 부대에서 받았던 가혹행위를 중대장이 은폐했다는 양심선언이 7년 만에 나왔다.

고 일병과 함께 근무했던 예비역 부사관 A씨는 7일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당시 부대 분위기는 평소 폭언이 있었고, 고 일병은 휴가 전 ‘마음의 편지(지휘관에게 병영 부조리·고충 신고)’를 작성했지만 중대장인 B대위는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상급부대에 알릴 수 없게 막았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전차부대 정비반에서 근무하던 고 일병은 평소 가혹행위를 당해 원형탈모 등의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A씨는 “고 일병이 실수하면 심하게 야단을 쳤다던가, 전차 안에 가둔 뒤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며 “정비반 간부가 고 일병에게 ‘아 이 XX 또 이러네’라고 하는 말을 직접 들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앞서 고 일병의 유서에도 “군 생활한 지 거의 1년이 다 돼 가는데 심적으로 너무 힘들다” 등 폭언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직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말이 담겨 있었다.

7일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임태훈 소장이 육군 11사단 고 일병 사망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는 또 “고 일병 사망 이후에는 간부들을 긴급 집합시켰다. 그 자리에서 B대위는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앞으로 헌병대 조사가 나올텐데 대대 분위기가 안 좋으니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말고 모른다고 말해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말했다.

군인권센터는 당시 11사단 헌병대도 이런 은폐 정황을 파악해놓고도 관련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고 일병 사망 이후 헌병대가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받은 설문지를 증거로 제시했다. 설문지에는 “고 일병 사망 사건에 대해 간부들로부터 문제점을 발설하지 말라고 교육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글이 담겨 있다.

부대 간부들은 고 일병 사망 이후 조사에서 고 일병을 꾸중한 적은 있지만, 구타나 욕설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B대위에게는 근신 5일, 가해자로 지목된 정비관 간부는 견책 처분의 경징계만이 내려졌다.

고 일병의 어머니 이순희씨는 7년이 지나서야 이러한 이야기를 A씨에게 전해 들었다. 이씨는 “군이 제 아들을 두 번 죽였다. 저는 군에 철저히 속았다”며 “2568일간 군이 제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은폐했다”고 토로했다. B대위는 어머니 이씨에게 고 일병 사망 이후 받은 경징계에 대해 탄원서를 써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씨는 지난달 17일 중대장 B대위를 육군 군검찰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했다. 공소시효를 단 열흘 남겨둔 시점이었다. 군검찰은 고소 열흘 만인 지난달 25일 B대위를 직권남용 혐의로 군법원에 기소했다. 이씨는 “중대장 선에서 사망 사건 은폐를 결심하고 지휘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직권조사 결정을 통해 즉각 재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또 “아들이 간부들로부터 ‘뺑이치는 방법을 연구하고 왔느냐’, ‘고문관 되려고 작정했느냐’ 등의 폭언을 듣고, 생활관에서 일주일간 나가지도 못한 채 시험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아들은 건망증에 시달렸으며 멍하게 있는 시간도 늘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폐 지시 이후 모든 조사 내용이 제 아들에 불리하게 기록되는 바람에 국가보훈처가 아들이 원래 문제가 있어 죽은 거라며 보훈 비해당 처분을 내렸다”며 “5년의 법정 다툼 끝에 2020년 대법원이 근무 스트레스를 인정해 판결을 뒤집긴 했지만, 은폐된 진실 속에 아들은 그 긴 시간 동안 무슨 문제가 있어 세상을 떠난 아이로 취급받았다”고 지적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