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코트 ‘황제’ 라파엘 나달(세계랭킹 5위, 스페인)이 프랑스오픈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통산 22번째 메이저대회 우승 대기록을 썼다. 희귀병으로 인한 통증을 마취 주사로 이겨내며 거머쥔 우승이다.
나달은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2022 시즌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캐스퍼 루드(8위, 노르웨이)를 3대 0(6-3 6-3 6-0)으로 완파했다. 클레이코트인 프랑스오픈에서만 14번 결승에 진출해 모두 우승하며 ‘흙신’의 명성을 이어갔다. 프랑스오픈에서의 전적은 112승(3패)으로 늘렸다.
만 36세인 나달은 생일(6월 3일) 이틀 만에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최고령 우승자가 됐다. 종전 기록은 1972년 안드레스 히메노(스페인)가 세운 만 34세다. 과거 영국 랭킹 1위였던 그렉 루세드스키는 BBC에 “우리 세대에서 30세 이상은 보너스 타임이었다”며 “나달이 성취한 것은 초인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호주오픈에 이어 프랑스오픈까지 2연속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자신의 메이저 최다우승 기록도 22회로 늘렸다. 20회로 공동 2위인 노박 조코비치와(1위, 세르비아) 로저 페더러(스위스)와의 격차도 벌렸다. 나달이 연속으로 메이저대회 우승을 한 것은 2010년 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을 연달아 차지한 이후 처음이다.
자신을 상징하는 프랑스오픈에서 희귀병을 이겨내고 이룩한 우승이라 더욱 값지다. 나달은 왼발에 ‘뮐러 와이즈 증후군’을 앓고 있다. 발바닥 관절 변형 희귀병으로 통증을 수반한다.
2005년 처음 병을 진단받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통증이 심해진 탓에 지난해 6월 프랑스오픈 이후 시즌을 통째로 쉬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고, 이달 초 이탈리아오픈에서도 이 문제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나달은 프랑스오픈에서도 왼발 통증을 없애기 위해 마취주사를 맞고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경기를 뛰었다. 16강과 8강에서 4시간을 넘게 뛰었고, 준결승에서도 3시간 이상 경기를 하며 투혼을 불살랐다.
우승 후 나달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상적인 준비를 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프랑스오픈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고, (우승을) 해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36살에 제 경력의 가장 중요한 코트에서 한 번 더 뛰게 될 것이라고 결코 믿지 않았다”며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달 말 세 번째 메이저인 윔블던대회 참가는 아직 불투명하다. 윔블던에서 두 번 우승한 나달은 “윔블던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내 몸이 윔블던에 갈 준비가 돼있다면 난 윔블던에 있을 것”이라면서도 “소염제로 내가 경기할 수 있다면 ‘예스’, 마취주사를 맞아야만 경기할 수 있다면 ‘노’. 나는 그 상황에 나를 앉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달은 장기간 통증을 가라앉히는 고주파절제술을 받을 예정이지만, 효과가 없을 경우 수술도 고려해야 한다.
한편 나달의 프랑스오픈 우승에 스포츠계의 찬사가 이어졌다. 결승전 패자이자 나달을 우상으로 삼은 루드는 “당신(나달이) 훌륭한 챔피언이란 걸 알고 있고 결승전에서 당신과 겨루는 게 어떤 의미인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크로아티아 전 테니스선수인 이반 류비치치는 “동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프랑스오픈 메인코트인 필립-샤르티에의 명칭을 나달의 이름이 들어가도록 바꿔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