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항우, 민주당, 그리고 권토중래

입력 2022-06-05 19:24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오강을 지나다가 항우를 추모하는 시, ‘제오강정(題烏江亭)’을 지었다.

이기고 지는 건 병가의 일이라 기약하는 것이 불가하고 / 모욕을 안고 수치를 이겨내는 것이 곧 사나이라 / 강동의 젊은이는 인재가 많으니 /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으리.

이 시에서 두목은 항우가 수치심을 이기고 강동으로 가서 힘을 키운 후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권토중래 捲土重來) 유방과 다시 자웅을 겨뤄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항우는 해하 전투에서 유방에게 결정타를 맞고 패했다. 그의 참모들은 강동으로 돌아가서 후일을 도모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는 이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서 끝까지 싸우다 결국 목을 찔러 자결했다. 영웅으로 대접 받던 그가 작은 고을에 숨어들어 가야 하는 수치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힘은 산을 뽑고, 기상은 세상을 덮을 만한(力拔山氣蓋世) 장수인 항우는 중국 천하를 두고 유방과 줄곧 경쟁했다. 전투에서 패하는 법이 없었다. 팽성 전투에서는 고작 5만명의 군사로 56만명의 유방 군사를 무찌르기도 했다. 그러나 천하는 결국 항우가 아닌 유방이 차지했다.

‘역발산 기개세’의 장수 항우는 왜 패했을까?

먼저 자만심이 강하고 오만했다. 전투에서 연전연승했으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이런 오만은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을 그르쳤다. ‘홍문의 연회’에서 참모 범증의 말을 듣지 않고 유방을 놓아줘서 유방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게 된 일이나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였던 함양을 떠나 자신의 거점인 팽성으로 돌아가서 한신이 손쉽게 천하의 중심인 관중을 차지하게 한 일이 대표적인 오판이다.

특히, 함양을 버리면 안 된다는 참모들의 의견을 묵살하며 항우가 했던 대답이 기가 막힌다. ‘부귀를 이루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했단다. 이 말에서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두 번째는 민심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항복한 진나라 군사 20만명을 생매장하는 만행을 저질러서 진나라 민심이 그에게서 완전히 떠나게 만들었고, 진나라에 반기를 든 명분이었던 초나라 의제를 살해해서 초나라 백성의 민심까지 잃었다.

마지막으로 의심이 많아서 부하들을 믿지 못하였고 인재를 제대로 쓸 안목조차 없었다. 맹장인 영포를 유방에게 빼앗겼고 유능한 장군인 종리매를 잃었으며 진평의 반간계에 넘어가 없어서는 안 될 유능한 책사인 범증을 버렸다.

선거에서 연전연승하며 힘은 산을 뽑고 기상은 세상을 덮을 것만 같던 더불어민주당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국민의힘에 패배했다. 민주당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민심까지 많이 잃어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민주당이 항우처럼 이대로 자멸할지, 아니면 항우가 실패한 원인을 곱씹으며 수치심을 이기고 힘을 키운 후 ‘권토중래’할지, 지켜볼 일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