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집에 2t 짐 꽉차…치우는 비용만 100만원” [르포]

입력 2022-06-05 14:42 수정 2022-06-05 21:26
지난달 26일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주민 A씨의 방에 짐과 빈 박스가 가득 쌓여있다. 테니스 선수였던 A씨는 부상 탓에 짐을 정리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김이현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현관부터 택배 상자 20여 개가 어른 키만큼 쌓여있었다. 작은 방은 아예 창고처럼 천장까지 빈 상자가 닿아있었고, 화장실에는 다 쓴 플라스틱 용기가 가득 차 변기에 겨우 한 사람 앉을 공간만 남아있었다. 이 집에는 A씨(59)가 혼자 산다. 고등학생 시절 테니스 선수였는데 부상 때문에 자꾸 팔이 빠지다 보니 짐을 쌓아두고 살기 시작했고, 더 짐을 놓을 데가 없어지자 서울시 주거안심종합센터에 SOS를 쳤다.

이런 수준의 집을 청소업체를 통해 치우려면 얼마나 들까. 동행한 권혜린 스페이스함께 대표는 “대략 2t 정도의 쓰레기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최소 100만원 이상은 견적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처럼 주거에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1인 가구 주거지가 대부분 오피스텔이나 노후 아파트인 경우가 많고, 집안일을 도울 사람은 없으며, 청년과 노인이 많다 보니 간단한 집수리에도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들을 위해 주거안심종합센터를 설치해 A씨와 같은 거주자에게 클린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벼운 집수리는 홈케어 서비스를, 나아가 커튼 설치 같은 기초적인 작업은 신속생활불편처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5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1~4월 사이에만 1363건의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A씨의 경우 동주민센터에서 주거안심종합센터를 소개해줬다. 황은아 서울시 양천센터 과장은 “주민센터에서 전입 과정에서 불편사항을 확인하는 중에 이삿짐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거안심종합센터로 연결해줬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 역시 양천센터와의 연계로 집을 방문했다.

A씨는 전형적인 노인 1인가구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박스 안에 어떤 것이 들었는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며 “집이 정리되면 홀가분해질 텐데 싶다가도 물건들을 버리려고 하면 아깝다”고 말했다. 실제 거실 왼편에 3개의 장롱이 있었는데, 내부는 10년이 넘은 와이셔츠 등 옷들이 가득 찬 상태였다. 버리자니 아까워 쌓아두고 산 셈이다. 장롱으로도 모자라 그 앞에는 대형 옷걸이까지 따로 뒀다.

그가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몸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테니스를 하다 부상을 당하면서 조금만 활동을 해도 팔이 빠진다. A씨는 “설거지만 해도 팔이 빠진다. 그러다 보니 짐을 쌓아두었고, 이젠 정리를 하려 해도 물건을 빼놓을 공간이 없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방의 상자나 옷장, 찬장, 냉장고 등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버려야 할 것과 보관해야 할 것을 골라냈다. 그는 “지금은 집주인이 A씨가 아니라 박스들”이라며 “사용하지 않는 짐부터 내보내 공간을 정리해야겠다”고 말했다. A씨는 “보름 정도만 주면 노트에 버릴 것들을 정리해보겠다. 이런 것까지 해주니 너무너무 고맙다”고 답했다.


클린케어 서비스는 1인 가구 주택관리 서비스 중 가장 고난도 서비스다. 양천센터의 경우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26건을 진행했는데, 클린케어는 A씨 사례가 처음이었다. 한 건당 50만원 내에서 지원되지만 A씨의 사정을 고려해 중앙주거복지센터에 심의를 신청해 지원 확대를 논의할 예정이다.

싱크대 고장, 도배 등 가벼운 집수리가 필요한 경우엔 홈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청인에게 관련 업체를 연결해 역시 50만원 범위 내에서 지원한다. 황 과장은 “지난해 11월쯤 보일러가 고장 났는데 집주인이 처리를 안 해줘서 온수를 못 쓴다는 사례가 있었다”며 “수리 업체를 연결해 줘서 막 추워지는 시기에 무사히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고 전했다.

신속생활불편처리 서비스는 훨씬 기초적인 작업 위주다. 키가 안 닿아 형광등을 못 갈거나 커튼을 사긴 샀는데 설치 엄두가 안 날 경우 등에 신청하면 된다. 이왕 온 김에 다른 불편사항들도 점검해 홈케어·클린케어로 연계해준다. 형광등이나 수도꼭지, 콘센트, 커튼 등 고장·불편 시설의 부품만 구비해두면 된다.

황 과장은 “한 직장인 여성이 ‘오후 7시 이후에 집에 들어오는데 화장실 문고리를 교체해달라’고 서비스를 신청한 적이 있다”며 “센터 소속 여직원이 신청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직접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정보를 얻고 오는 분들이 많다”며 “작년 10월부터 12월까지 14건을, 올해는 예산 문제로 4월부터 시작했는데 4~5월에만 벌써 12건의 신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1인가구 주택관리서비스는 서울시 거주 1인 임차 가구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중위소득 120% 미만이면 재료비를 포함해서 전액 무료 지원되고, 그 이상은 필요비용의 50%를 본인이 부담한다.

서울시는 1인 가구 주거 지원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부동산값 급등으로 젊은 층의 내 집 마련 꿈이 멀어지면서 이들이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역세권 청년주택의 경우 2025년까지 4만8000호를 공급할 방침이다. 시는 이를 위해 예산을 전년(645억원) 대비 배 이상인 1394억원으로 확대했다. 입주예정자 중 가구당 월평균 소득 100% 이하(신혼부부 120% 이하)인 경우 보증금 무이자 지원을 병행한다.

1인 가구에 최대 10개월간 2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 월세 지원 대상자를 2020년 5000명에서 올해 4만6000명으로 확대했다. 임차보증금의 이자 지원 대상도 내년까지 10만3542명으로 늘어난다.

강준구 김이현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