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 정재승이 환경영화제 홍보하는 까닭은

입력 2022-06-05 06:01
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SIEFF) 에코프렌즈로 위촉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개막식이 열린 2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SIEFF 제공

“우리는 우리가 내린 가장 최근의 의사결정들에 의해 지금의 상태에 놓여있다. 더 나은 세상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더 나은 의사결정들이 축적돼야 한다. 환경 문제와 뇌과학은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이나 그에 앞선 의사결정은 온전히 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지난 2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만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서울숲에선 환경재단이 주최하는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SIEFF) 개막식이 열렸다. 정 교수는 올해 영화제 홍보대사인 에코프렌즈로 활동하고 있다.

뇌과학자인 그가 어떤 이유로 환경영화제에 참여하게 됐을까. 정 교수는 “유독 우리나라에선 기후변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고, 특히나 그걸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들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제 연구 주제가 사회적 의사결정이다.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연구하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기후변화를 위해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할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환경과 관련한 활동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환경 이슈를 다루는 토론회, 강연회 등 환경재단의 다양한 활동에 6~7년 전부터 참여했다. 지난해부터는 환경재단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단지 연구 때문에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아니다. 그는 “과학자로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보편화되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회로 가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지금 가진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재분배하면 추가로 생산하지 않고도 기아로 허덕이는 사람의 수를 현저히 줄일 수 있는가’는 굉장히 중요한 과학적 질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환경 문제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 수준은 높지 않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환경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고, 내 얘기가 아닌 먼 얘기라고 생각한다”며 “유럽에선 사람들의 사회적 관심, TV를 켜면 나오는 이슈들이 대부분 동물이나 생태계, 지구 등 환경 문제”라고 짚었다.

정재승 교수가 2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열린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SIEFF) 개막식에서 사회를 맡은 배우 권율과 이야기하고 있다. SIEFF 제공

그는 “해외에선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환경 문제에 대해 비중 있게 가르치면서 환경을 위해 뭘 할 건지 계속 생각해 보도록 한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업을 할 때 환경 문제나 기후 변화 문제가 늘 1순위 주제”라면서 “우리나라는 환경이란 주제에 대한 사회적 환기가 현저히 떨어진다. 정말 관심있는 사람들만의, 소수의 주제처럼 느껴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깨닫고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환경영화제의 역할은 중요하다. 정 교수는 “2년 전쯤 ‘산호초를 따라서(Chasing corals)’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전 세계 산호의 4분의 1 정도가 백화 현상 때문에 죽어가고, 산호 근처에 있는 바다 생명체들도 함께 죽어간다”며 “산호들이 죽어가는 모습이 슬퍼 처음으로 자연환경 다큐를 보고 울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실제로 내 주변에서 생명체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목격하면 사람들의 행동이 바뀔 것”이라며 “환경재단이 20년 가까이 환경영화제를 통해 꾸준히 사회적 환기를 해온 것은 대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환경문제가 자신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뇌과학자들은 환경과 관련해 어떤 연구를 할까. 그는 “인간이 습관적 행동을 어떻게 바꿔야 지구에 혹은 건강에 더 유익할까, 또는 동물의 생명권에 더 유익할까 같은 주제로 연구한다”고 말했다.

습관적 행동에는 식습관도 포함된다. 정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커지게 된 건 육식을 하면서부터다. 불에 고기를 익혀먹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부드러운 형태로 많은 에너지원을 섭취할 수 있게 됐고, 소화시키는 시간은 줄었다”며 “에너지가 온전히 뇌로 옮겨가면서 인간은 돌고래나 코끼리보다 작은 뇌를 가졌음에도 더 많은 에너지를 얻어 똑똑한 호모 사피엔스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본질적으로 뇌의 목적은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흡수해서 할당하는 것인데, 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점점 육식을 갈구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히 제어하고 몸에 필요한 만큼만 육식하면서 살아가려면 굉장한 현명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이명세 집행위원장과 에코프렌즈 정재승 교수, 개막식 사회를 맡은 배우 권율, 최열 조직위원장(왼쪽부터)이 2일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개막식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SIEFF 제공

지구를 지키기 위해 육식을 갑자기 멈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듯 식욕을 제어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이 소고기 대신 닭고기 또는 생선을 먹거나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를 안 먹는 식의 실천을 하면 전 지구적으로 환경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면 어떤 방식으로든 환경을 위해 노력하려 애쓴다. 애쓰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운동가들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선 개개인의 행동보다 기업 등 큰 규모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 교수는 “동의한다. 환경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개개인이 뇌에 새기게 되면 그런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기업이 바뀌고, 자본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이 바뀔 것이다. 그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바다에서 어업 행위를 하는 어부들, 조직적으로 수산물을 포획하고 유통하는 회사들, 그들에게 인증해주는 협회들을 감시하고 그들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고, 바다를 위해 애쓰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건 시민들의 경각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의 개별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환경을 위한 행동을 사회에 요구하는 것, 자본과 권력이 그 방향을 향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면 훨씬 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그래서 사회적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사회적 의사결정을 이야기하며 리차드 탈러의 ‘넛지’를 예로 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선택의 구조를 잘 짜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더 나은 결정을 하게 만들까’에 대한 얘기다.

그는 “학교 식당에 가면 아이들은 배고파서 허겁지겁 접시에 음식을 집어담는다. 그 때 배식대 앞 부분에 고기를 놓는지 채소를 놓는지만으로도 아이들의 식습관이 바뀐다”며 “의사결정을 할 때 건강이나 행복, 나아가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가 기준에 포함돼야 하며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달고 맛있는 제품을 많이 팔까’ 같은 기업이나 자본의 기준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자본과 관력을 가진 사람들의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규칙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기고, 더 많은 쓰레기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번 영화제엔 73편의 작품이 온·오프라인으로 상영된다. 개막작은 환경운동을 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멸종 세대 청소년들이 환경 전문가들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은 시릴 디옹 감독의 ‘애니멀’이다.

정 교수는 “환경 문제를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영화 속 아이들이나 그레타 툰베리처럼 학교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지구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부럽다”며 “동시에 아이들이 그런 목소리를 낸다는 건 어른들이 굉장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더 울림이 크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환경을 위해 매달 하나씩 실천을 쌓아가고 있다. 그는 “집에 꽃병을 치우고 화분을 갖다놨다. 물을 주고 키우면서 생명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싶었다”며 “생명을 키우다보니 생태를 알게 되고 종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환경과 건강을 위해 육식도 줄이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 안 먹기’를 하는데 얼마나 힘든지 이틀로 늘리지 못하고 있다”며 “고기가 없는 식사로 세 끼를 먹는 게 쉽지 않다. 그 하루는 매 끼니를 신경 쓰면서 먹게 된다. 처음엔 생선도 먹지 않았는데 요즘엔 생선이나 계란은 먹는다. 자꾸 타협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기성세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예전에 비해 훨씬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동시에 심각한 지구 환경을 만든 건 기성세대다. 육식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활을 바꿔보려 노력하는 모습, 동물 생명권에 대한 경각심 등을 보면 나이 든 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깨어있고 열려있다”며 “젊은 세대에겐 희망이 있다. 미래 세대에게 지구를 빌려쓰고 있으면서도 경각심 없이 사는 기성세대가 문제”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동물을 생각하고 지구 환경을 생각하고, 에너지 줄이려고 애쓰는지 기성세대는 보고 배우기도 해야 한다. 오랫동안 지켜 온 생활방식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해야만 의미있는 일이다. 환경 문제에 대해 세대 간 토론도 많았으면 좋겠다”며 그는 인터뷰를 마쳤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