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성향 후보들이 약진하면서 8년간 이어온 ‘진보의 교육감 독점 시대’는 막을 내렸다. 4년 전 선거에서 전국 17개 교육감 자리 중 14개를 차지했던 ‘진보교육 벨트’는 이번 선거에서 9석으로 축소됐다. 독주 체제는 끝났지만, 그렇다고 몰락한 건 아닌 수준이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두는 기류 속에서도 ‘지역 교육 수장’의 자리는 과반을 지키는 저력을 보였다. 이들은 앞으로 4년 동안 윤석열정부의 교육 정책 전반을 견제하는 진영으로 연대할 것으로 보인다.
진보·보수 누가 이겼나
승리한 지역으로만 보면 진보 성향 교육감이 9석, 보수 성향 교육감이 8석을 차지했다. 진보 승리 지역으로 분류되는 지역은 서울(조희연) 인천(도성훈) 울산(노옥희) 세종(최교진) 충남(김지철) 광주(이정선) 전남(김대중) 전북(서거석) 경남(박종훈) 등이다. 보수 진영은 경기도(임태희) 부산(하윤수) 대구(강은희) 대전(설동호) 충북(윤건영) 경북(임종식) 강원도(신경호) 제주(김광수)에서 이겼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먼저 관할 학생 수는 보수가 더 많다. 진보 성향 교육감 관할 지역에는 275만6309명이 있다(2021년 기준). 보수 성향 교육감 지역에는 320만809명이 있다. 관할 학교 역시 보수 쪽이 더 많다. 보수 교육감 지역에는 1만900개교, 진보 지역에는 9872개교가 존재한다. 학생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를 보수에서 승리하고, 인구 40만명이 안 되는 세종시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영향이 크다.
학생 수 등에 따라 책정되는 보통교부금 규모도 보수 쪽이 더 많다. 이번에 보수 교육감들이 차지한 지역의 지난해 보통교부금 규모(추경 포함)는 약 30조6956억원, 진보 교육감 지역은 약 27조2208억원 규모였다. 특별교부금이나 시·도전입금 등을 따져봐야 하지만 ‘교육감 파워’의 척도 중 하나인 예산 규모도 보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대 교원 단체의 평가는 엇갈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입장문을 내고 “10년 독주 진보교육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서울 세종 충남은 보수 분열에 따른 결과로 호남권조차 전교조 후보가 낙마하고 중도 성향 후보들이 당선됐다”며 “진보교육 독주에 종지부를 찍은 국민의 뜻을 낮은 자세로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논평에서 “‘전교조 OUT’을 내건 중도보수 교육감연대 후보 10명 중 6명이 고배를 마셨다”며 “진영 논리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교육감이 9명 당선된 것은 지난 12년 진보 교육감이 이뤄온 교육의 변화가 의미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광주·전북·대전이 캐스팅보트 쥘 듯
지역의 교육 권력이 팽팽한 구도로 짜이면서 진보와 보수의 교육 주도권 다툼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은 윤석열정부의 교육 정책을 견제하는 중심 세력으로 자리할 수 있다.
친전교조 성향 교육감은 줄었지만 교육계의 ‘파워그룹’ 지위는 어느 정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교조 출신이 교육감인 지역은 광주 인천 울산 세종 강원 충북 충남 전남 경남 제주 등 10곳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인천 세종 충남 전남 울산 경남 등 6곳이 살아남았다. 전남을 뺀 나머지 5곳은 전교조 출신 현직 교육감이 출마한 지역으로 ‘현직 프리미엄’ 덕을 톡톡히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다음 달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초대 위원 자리를 놓고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격돌이 예상된다. 시·도교육감협의회의 대표가 당연직으로 국가교육위 위원이 되는데 어느 진영에서 배출하느냐가 이번 선거 승패의 ‘바로미터’였다. 시·도교육감들이 중앙정부의 교육 행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다.
진보와 보수가 9대 8로 진보 쪽에서 가져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광주의 이정선, 전북 서거석 당선인은 진보보다는 중도에 더 가깝다는 분석도 있다. 대전의 설동호 당선인 역시 보수 성향보다는 중도에 더욱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따라서 이 세 지역이 진보와 보수의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보인다.
교육 권력끼리의 대결도 있지만 시·도지사와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높은 지역도 있다. 서울의 경우 오세훈 서울시장과 조희연 교육감이 나란히 재선에 성공했다. 인천의 경우도 전교조 출신 교육감과 국민의힘 소속 시·도지사가 당선됐다. 경기도 세종 충남 울산 경남 제주 등도 국민의힘 소속 시·도지사와 진보 성향 교육감이거나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도지사와 보수 성향 교육감이다.
새 정부 고교학점제 추진은 탄력 예상
고교학점제 도입에 찬성하는 후보가 대거 당선된 점도 눈에 띈다. 윤석열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기로 한 고교학점제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고교학점제는 고교생이 대학생처럼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수업을 골라 듣는 제도다. 대입 제도의 변화를 수반하고 교사·강사 수급제도 전반을 손대야 하기 때문에 초·중등 교육 전반을 관통하는 정책이다.
국민일보가 지난달 24~27일 진행한 전국 교육감 후보 57명 전원 인터뷰에서는 2025년 전면 도입에 반대하거나 도입 시기를 늦추자는 응답이 60%(34명)였다. 하지만 당선인 17명 중 10명은 2025년 3월 예정대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서울 인천 대전 강원도 경남 경북 울산 광주 전북 세종 등이다. 전북의 서거석 당선인의 경우 “고교학점제는 학생중심 교육과정의 꽃이다.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신경호 당선인은 “앞으로 2~3년 철저히 준비하면 강원도형 고교학점제 운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나머지 7명은 도입 취지에는 찬성 입장을 보였지만 학교 현장이 준비되고 대입 제도가 정비된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이었다. 충남의 김지철 당선인은 “고교학점제는 찬성하지만 2025년 도입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전면 도입 기한을 늦추는 게 좋은 방안”이라고 했다. 가장 신중한 입장을 보인 당선인은 대구의 강은희 당선인이었다. 그는 “취지에는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전면 도입은 무리”라면서 “(수업) 선택권만 강조하면 학교 현장에서 많은 문제에 부딪히는데 이런 문제를 보완한 다음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