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생명권, 예방효과, 오판 한계… ‘사형제 존폐’ 논쟁의 난제들

입력 2022-06-03 06:00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재판관 자리들. 국민일보DB

더욱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불가피한 선택인가, 정당화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제도(制度)살인’인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도 존엄한 가치로 보호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공익을 위해 제한할 수 있는가. 형벌의 본질은 범죄에 대한 응보인가, 아니면 교화인가.

사형제에 헌법적 근거가 있는지, 국제사회의 기조에 맞춰 폐지해야 할 것인지 따지는 일은 윤리적·철학적 난제를 푸는 문제다. 헌법재판소는 앞서 두 차례 사형제를 합헌으로 판단했으며 다음 달 14일 세 번째 판단을 위한 공개변론을 시작한다. 사형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래 있었던 만큼 연구는 이미 충분하다고 한다. 한 헌법연구관 출신 법조인은 “결심(決心)만 남아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형제가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따지는 일이 곧 사형제를 법률적으로 존치할 것인지 폐지할 것인지의 문제로 바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헌재는 대다수 국가가 위헌 결정이 아닌 헌법 개정이나 입법으로 사형제가 폐지했다고 지적한다. 다만 앞서 헌재가 사형 제도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결국 사형제를 둘러싼 존폐의 시각이 찬반 양론처럼 드러났었다. 쟁점은 ▲헌법에 과연 사형 제도의 근거가 있는지 ▲사형 제도를 통한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 ▲범죄자의 생명권을 다른 이들과 달리 볼 수 있는지 ▲오판의 가능성을 사형 폐지 필요성으로 연결할 것인지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 등의 자책감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을 두고 다양했다.


헌법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사형’
사형 제도를 둘러싼 관점은 과연 우리 헌법에 사형을 허용하는 명문 규정이 있는지를 놓고서부터 갈라진다. 현재까지 헌재가 다수의견으로 내놓고 있는 답변은 “문언의 해석상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110조 제4항은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에 대해 설명하면서 단서조항으로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한다. 헌법에서 ‘사형’이 등장하는 것은 이 때가 유일하다.

사형 제도를 합헌으로 보는 견해는 이를 헌법이 간접적으로 사형 제도를 긍정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한다. 사형이 비록 군사재판과 관련한 단서조항에서 비로소 등장하지만 군사재판에만 한정된다는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사형에 대한 선이해(先理解)를 기초로 이런 단서조항이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조항의 신설은 민간재판에서도 사형이 선고될 수 있음을 전제로 했다는 해석이다. 법무부는 13년 전 이 조항을 ‘사형제의 헌법적 근거’라고 주장했고 헌재에서 다수의견으로 받아들여졌다.

사형 제도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이들은 이 단서조항이 사형제의 헌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대로 해석한다. 해당 단서조항의 도입 배경에는 사형 선고를 억제하라는 맥락이 있고, 그렇다면 오히려 사형 제도의 심각성만 부각한 것으로서 의미를 정반대로 이해해야 옳다는 논리다. ‘부천 부모살해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고 이번에 위헌소원을 청구한 윤모씨 측은 “설령 헌법조항이 사형제의 근거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쟁 시나 이에 준하는 상황에서의 범죄에 한해 사형제를 존치시키는 근거가 될 수 있을 뿐, 범죄 일반에 대한 헌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효과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궁극의 형벌인 사형과 범죄의 예방 효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해낸 유의미한 통계는 아직 없다고 한다. 사형 집행이 몇 명의 피해를 막았다든지 하는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헌재가 판단할 때까지는 인용된 것이 없었다. 이런 현실은 사형이 존치돼야 한다는 쪽에서나 폐지돼야 한다는 쪽에서나 상대 측의 주장을 향해 “의미 있는 근거가 없다”고 비판하는 일로 이어졌다. 똑같은 현실을 놓고 합헌론 쪽에서는 “효과가 없다고 속단할 수 없다”고 말해 왔고, 위헌론 쪽에서는 “효과가 실증되지 않았다”고 맞섰다.

누구나 수긍하는 통계가 없었지만 헌재가 판단을 피하지는 않았다. 헌재는 다수의견을 통해 사형이 다른 형벌에 비해 일반적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범죄예방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했다. 범죄자가 범죄로 인해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불이익이 커질수록 범죄 행위를 포기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봐야 옳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곧 사형에 위하력(威嚇力·형벌로 위협함으로서 범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는 논리다. 많은 법률가들은 벌금형보다는 징역형이, 단기의 징역형보다는 장기의 징역형이, 유기징역형보다는 무기징역형이 범죄억지력이 크다고 본다. 사형으로는 더욱 큰 위하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사형 제도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견해는 이 위하력이 과학적 통계로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데 주목한다. 다른 형벌에 비해 범죄억지력이 효과적이라는 확실한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면, 사형의 위하력 주장도 막연한 추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형으로 명백히 예상 가능한 것은 범죄인의 재범을 원천 차단하는 것 뿐인데, 그 효과는 무기징역형이나 종신형으로도 기대할 수 있다고 위헌론은 말한다. 반면 법무부는 사형을 폐지한 나라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사형 폐지에도 범죄가 오히려 감소하였다는 등의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했다.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존엄성
궁극적인 문제는 ‘남의 생명을 박탈한 범죄자의 생명도 존엄한가’ 하는 대목이다. 이는 범죄자의 생명권도 그 자체로 보호해야 할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포기할 객체로 볼 것인지의 가치판단 문제다. 일단 사회적인 여론은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존엄성이나 생명권은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헌재의 2010년 사형제 위헌 여부 판단 당시 법무부는 “사형제도 존치에 관한 국민 여론이 폐지 여론보다 2배 이상 높다”고 했었다. 타인의 존엄성을 짓밟은 이들이 본인의 존엄성을 이야기할 때 사회적 반응은 좋지 못하다.

합헌론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권 박탈은 무고하게 살해당한 일반 국민의 생명권 박탈과 다르다는 견해다. 극단적으로 그런 두 생명권이 충돌한다면, 무고한 일반 국민의 생명권 박탈 방지가 보다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제로 침해될 범죄자의 사익은 일반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보다 클 수 없다고 헌재는 결정했었다. 이때 나온 말이 “국가는 때로 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소중한 가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면 헌법 제10조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인간은 ‘모든 국민’이라 규정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아무리 극악한 범죄자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사형은 이미 이뤄진 법익침해에 대한 응보에 불과하며, 살인자의 사형으로 피살자의 생명이 보호되거나 구원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형은 ‘악성’이 극대화된 때에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도 제시됐었다. 사형은 악성이 극대화된 범행 당시가 아니라 인간 본성을 일부라도 회복한 안정된 상태에서의 생명 박탈일 텐데,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오판, 교도관의 자책감 문제
사형제 폐지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로 제시된 것 중에는 잘못된 판결의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법관이라도 인간에 불과하며, 결점이 없는 사법제도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낳을 사형제가 사라져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져 왔다. 또한 사형을 선고하는 법관, 사형 집행을 하는 교도관들의 자책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거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생명을 박탈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인간 존엄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사형제를 합헌으로 바라보는 쪽은 다만 이러한 오판 가능성을 형벌 제도 자체의 문제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오판의 한계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엄격한 증거조사절차, 판결을 시정할 수 있는 심급제도와 재심제도 등으로 해결해야 할 뿐, 그러한 한계가 곧 사형 폐지의 논리는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교도관 등의 자책감 역시 목적이라기보다는 ‘부수적 결과’라고 다수 재판관들은 판단했었다.

난제들은 헌재가 다시 결정문을 내놓을 때까지 계속 사회적 논쟁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헌재는 2일 다음 달의 공개변론 사실을 공식 밝히며 “사형제는 형사제도에 관한 매우 중요한 논제”이며 “학계에서는 물론 국민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하고 있다”고 했다.

헌재는 “이 사건 변론을 사형제에 관한 헌법적 논의의 장으로 삼아, 헌법적 쟁점 및 그에 관련된 의견들을 청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판대상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형제를 위헌으로 본 헌법재판관의 숫자는 96년 2명, 2010년 4명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